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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레이더] 몰리는 외국자본 …'得보다 失'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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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영국에서 열리는 윔블던 테니스 대회는 '테니스의 월드컵'이라 불릴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그러나 정작 대회를 주최하는 영국인이 우승컵을 차지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 돼버렸다. 남자단식은 1909년, 여자단식은 1914년 이후 줄곧 이방인들이 우승컵의 주인이 됐다. 영국인들에게는 참으로 약오를 일이다.

이처럼 영국인들이 마련한 파티에 쏠쏠한 재미는 외국인들이 보는 현상을 '윔블던 효과'라고 한다. 영국이 79년 침체에 빠진 금융시장 개혁을 위해 증권거래의 규제 완화를 중심으로 '금융빅뱅'을 단행했지만 런던에서 미국계 증권사들의 영향력이 커졌던 것을 빗댄 말이다. 물론 외국계 진출로 영국 금융산업의 인프라가 강화되고 고용 창출이 활발해지는 등 긍정적 효과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증시의 외국인 비중이 42%를 넘어서고 현대투신과 한미은행이 잇따라 미국계 자본에 넘어가면서 그 득실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한편에서는 기업 가치가 증대되고 경영이 투명해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다른 쪽에선 자본 유출과 금융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이후 짧은 기간에 기업 체질이 개선되고 금융시장의 인프라가 강화된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외환위기 당시 대우그룹은 불투명한 지배구조 때문에 계열사가 동반 몰락했다. 반면 최근 SK그룹과 LG그룹은 그룹을 뒤흔든 위기를 맞았지만 아직 건재하다.

SK그룹은 외국인의 압력에 눌려 한 일이지만 지배구조를 개선하자 경영투명성이 높아졌다는 이유로 핵심 계열사들의 주가는 상승세를 타는 효과를 얻고 있다. LG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덕에 위기의 LG카드를 손쉽게 내던져 핵심 계열사로의 위기 확산을 막았다.

이처럼 외국인의 국내 진출은 국내 기업의 위상과 경쟁력을 대폭 높여놓았다. 하지만 이렇게 달라진 환경에서 배당소득과 시세차익의 과실은 물론 경영권까지 차지하는 외국인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영국과 같이 '윔블던 효과'의 부정적 측면이 확대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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