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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민용 항로관제 레이더 내년 첫 가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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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마닐라를 떠난 필리핀 항공 소속 여객기가 오후 9시17분 제주 상공을 비행하던 중 항로관제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그 시각 제주도 모슬포 공군 항로관제 레이더가 이상을 일으켜 데이터 전송이 중단된 것이다. 항공기 관제업무를 담당하는 건설교통부 항공교통센터(인천ACC)에는 즉각 비상이 걸리고 이내 이 여객기와 무전연락을 시도한다. 다행히 기장이 바로 응답한다. 기장이 침착한 목소리로 위치와 고도를 알려오자 관제센터 요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모슬포 공군 레이더기지와 연락을 취한다. 여객기가 제주지역을 벗어나 인근 레이더 관제범위에 들어오자 관제센터 레이더 모니터에 여객기 위치가 표시된다. 여객기가 레이더에서 사라진 23분간 여객기 승객들은 긴박한 상황을 까맣게 모른채 객실 모니터에 표시되고 있는 여객기가 서해안 상공을 따라 나는 모습을 졸리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제주 항로에서 이같은 위급한 상황은 내년부터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기존 모슬포 군용 레이더 외에 제주도 서귀포에 민용(民用) 항로관제 레이더가 국내에선 처음으로 설치되기 때문이다.

건설교통부는 35억원을 들여 올 연말까지 제주 서귀포 안덕면 동광리에 자체 항로관제 레이더를 완공키로 했다. 건교부 항공안전본부 관계자는 1일 “제주 항로를 운항하는 항공기의 안전을 위해 자체 항로관제 레이더를 올해 말까지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모슬포 레이더에 이상이 생겨 가동이 어렵더라도 정상적인 항로 관제가 가능한 일종의 안전장치가 마련되는 셈이다. 레이더 탐지범위는 제주 동광 기점으로 최대반경 250 노티컬 마일(450km)이다.

정부의 민용 항로관제 레이더 설치는 1952년 미 공군이 우리나라 공역에 대한 항로관제를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 기존의 항로관제 레이더는 모두 영공 방위를 위한 군용으로 공군이 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역의 항로 관제권은 1995년 3월 공군에서 건교부 인천ACC로 이관됐지만 건교부는 자체 항로관제용 레이더 장비 없이 공군 군용 레이더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다.

선진국에서는 인근 지역의 항로 관제 레이더 점검이나 이상 발생시를 대비해 레이더를 중복 설치함으로써 탐지범위를 3중·4중으로 겹치도록 해 항로를 관제하고 있다. 승객 안전과 직결되는 항로 관제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인천국제공항이 위치한 인천 영종도 주변 상공도 4곳의 레이더 기지에서 보내는 자료를 동시 수신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제주 남부 상공의 경우 모슬포 공군 레이더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정상적인 항로관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여분의 레이더가 인근 지역에 없었다.

국내 항공 관제업무를 총괄하는 인천ACC에서는 전국의 공군 레이더 기지 10곳에서 전송해오는 레이더 자료를 화면으로 보면서 우리나라 공역을 오가는 모든 여객기의 위치와 고도를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항로관제 레이더는 곧바로 항공기 탑승객의 안전과 직결된다. 항공기의 위치와 고도가 정상 범위에서 벗어나면 항공기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레이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해당 지역을 비행하는 항공기들은 자신의 위치와 고도를 일일히 관제센터에 무전기로 알려야 한다. 항공기 기장은 위치와 고도를 무전으로 보고하고 관제실은 지시를 내리는 식이다. 무전 교신 방식은 수많은 항공기의 위치를 동시에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없어 레이더에 비해 정확성이나 비상시 위기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

◇공역=항공기의 비행에 적합하도록 통제에 의한 안전조치가 이루어지도록 공중에 설정되는 구역. 국가의 무형자원 중의 하나다. 항공기 비행의 안전, 우리나라 주권 보호 및 방위 목적으로 지정됐다. 항공기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비행을 위해 항공교통관제, 비행정보 및 경보 업무를 제공하는 구역으로 인천 비행 정보구역의 면적은 남한 면적의 약 4배에 달하는 약 43만㎢다.

김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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