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바둑] 깨어나는 돌부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이창호 9단의 새해 행보가 심상치 않다. 1월 한 달간 13승 무패. 지난 연말부터 계산하면 16연승이다. 승률 100%를 기록 중인 기사는 강동윤 7단(7승 무패), 최원용 5단(7승 무패)까지 3명이지만 그중에서도 이창호 9단이 단연 선두에 서 있다. 13승 중 가장 굵직한 승리는 1월 26일 치른 3기 원익배 10단전 결승 1국. 목진석 9단을 상대로 170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결승 2국은 2일 오후 8시 바둑TV에서 열리는데 여기서 승리하면 2008년 첫 타이틀 사냥에 성공한다.

바둑 내용도 지난해와 크게 다르다는 평가다. 지난해는 건강 탓인지 어딘지 딱딱한 흐름이었고 잦은 착각에다 계산도 정밀하지 못해 아쉬움을 샀으나 올해는 이런 잔 실수들이 씻은 듯 사라졌다. 전투력도 좋고 감각도 유연해져 스무드하게 밀어붙여 넉넉히 이기고 있다. 이창호 9단은 “몸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성적이 너무 좋아 신기하다”고 겸손해한다.

바둑계에선 지금의 추세는 부활의 조짐으로 봐도 충분할 것 같다는 분위기다. 팬들이 주는 인기상을 5년 연속 수상하며 2007년 바둑대상 시상대에 오른 이 9단은 처음엔 모범답안만 내놓다가 사회자의 거듭된 질문에 “내년에는 이세돌 9단을 겁나게 하겠다”고 말했는데 13연승은 일단 ‘겁나는’ 질주가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삼성화재배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이세돌 9단도 “올해는 이창호 9단과 결승전 같은 데서 진검승부로 맞붙고 싶다”고 말해 이(李)-이(李) 결전의 빅카드가 서서히 무르익는 인상이다.

◇살아난 이창호의 수읽기

▶장면 1=좌상의 바꿔치기에서 성공한 백이 형세를 리드하고는 있지만 우상에선 곤란한 상황에 봉착했다. 뿌리없는 백 대마의 처리에 따라 승부가 갈리는 장면인데 백1, 3의 콤비네이션이 과감하고도 날카로웠다. 4는 불가피한 후퇴(A로 막으면 백4로 끊긴다). 여기서 5로 움직여 사석에 숨을 불어넣는다. 기보만 보면 ‘이세돌 바둑’인가 싶은 격렬한 수읽기다.

▶장면 2=목진석 9단의 흑3도 불가피한 후퇴였고(손 빼면 백B로 넘어 귀가 걸려든다) 4로 움직이자 상변 흑진이 초토화될 기세다. 5로 씌웠으나 6이 양쪽을 노리는 강수여서 흑이 난관에 봉착했다. 7로 잡아 상변의 불을 껐으나 8로 5점이 잡혀 백의 승세가 굳어졌다. 전성기 뭇 고수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이창호의 수읽기를 다시 보는 듯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