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예술 정품공정’ 240억원 지원 … “창작 기폭제” “돈으로 도배” 평가 엇갈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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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문화 역시 정부 주도하에 진흥시켜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강하다. 최근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국가 무대예술 정품공정(國家 舞臺藝術 精品工程)’이란 프로젝트다.

2002년이 시발이었다. 취지는 전통극을 현대적으로 탈바꿈시키고, 세계에 수출할 수 있는 명품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당시 장쩌민 국가주석이 남쪽 지방을 순시하던 중 공연 예술 종사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약속했고, 이를 그해 11월 개최된 중국 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확정하면서 본격화됐다. 무려 2억 위안(약 240억원)의 기금이 조성돼, 5년간 수많은 예술작품에 지원금이란 명목으로 이 돈을 쏟아부었다.

베이징 올림픽 전에 완공될 국가대극원 개관에 맞추어, 세계 수준의 새 극장에 어울릴만한 작품 50개를 확보하겠다는 국가 주도의 공연 진흥책은 착착 진행됐다. 매년 30작품을 예비선정해 1차 지원을 하고, 이 중 10작품을 추려내 최종 선정 후 집중 지원하는 물량공세를 퍼부었다. 프로젝트는 2007년 마무리됐다. 경극·곤극 등 전통극이 절반가량 선정됐으며, 나머지 50%는 무용극·아동극 등 현대적인 공연물이었다.

심사는 전문성(전문가 평가)과 대중성(사회적 평가)을 두루 고려했다. 10인으로 구성된 전문가위원회가 각 지역 정부에서 추천한 작품을 직접 관람하는 ‘실사’를 통해 예술성과 사상성 등을 점수화했고, 공연 회수와 수입을 반영하는 사회적 평가를 동시에 진행했다.

성과는 분명히 있었다. 가난한 예술가와 단체들의 창작 의욕을 활성화시켰다. 중앙 중심으로 이루어진 공연 예술이 지방에서도 나름의 색깔을 띨 수 있게 하는 저변도 만들어주었다. 지원이 큰 만큼 무대·의상은 최첨단으로 업그레이드돼, 서구의 스펙타클한 뮤지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정부 주도의 정책이니만큼 ‘자유로움’이 가장 중시되어야 할 예술 분야에 사상성이란 목적 의식이 대부분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한계를 띨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심사위원 눈에 확 들어와야 하기 때문에 “창의성은 거세된 채 돈을 덕지덕지 바른 치장품”이란 비아냥도 들렸다. 치열한 경쟁 속에 한껏 치솟은 유명 연출가와 무대디자이너 등의 몸값은 정품공정이 끝난 현재 중국 공연 예술계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결국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판단은 해외에서 어떤 결과를 내느냐에 따라 갈라질 터. 올 가을 한국 무대를 찾는 장이머우 감독의 무용극 ‘홍등’은 ‘무대예술 정품공정’ 2차년도에 선정된 작품이다. 이 작품에 더욱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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