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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중국문화지도 <13> 공연 3. 부활하는 4대 전통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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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최민우 기자

곤극(崑劇)

16세기 명대 르네상스를 주도한 예술 장르다. 발원지는 장쑤성(江蘇省)의 쿤산(崑山)과 쑤저우(蘇州). 지금도 중국인들이 가장 자부심을 갖고 대하고 있으며 “곤극 배우가 진짜 배우”란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만큼 정통과 기본기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곤극은 사대부 등 귀족들이 즐겨 보고 들었다. 자연 자극적이고 말초적이기보단 우아하고 점잖으며 세련될 수 밖에 없다. 느리지만 부드럽고, 어렵지만 정제된 게 곤극이었다. 그러나 청대에 이르러 ‘경극’이 유행하면서 대중적인 지지에서 멀어졌고, 궁중 극단의 자리마저 위협받으며 침체의 길로 접어들었다. 20세기초 청말민초때는 타파되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5·4 운동 등 급속한 서구화 유입은 전통에 대한 강한 부정으로 나타났으며 ‘무병신음’(병도 없으면서 신음소리를 내듯 엥엥거리는 소리로 노래한다는 뜻)이란 꼬리표가 곤극에 붙어 다녔다.

멸종될 위기에서 곤극을 구해 낸 건 1950년대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였다. 위정자중 누구보다 문화적 소양이 높았던 그는 ‘전국 희곡대회’를 열었고, 여기서 곤극 ‘십오관’이 각광을 받으면서 곤극은 화려하게부활했다. 저우언라이는 “하나의 작품이 죽어가는 장르를 되살렸다”고 말했다. 최근엔 2001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무형유산으로 곤극이 뽑히면서 더욱 탄력을 받고 있는 실정. 특히 타이완의 자본으로 만든, 2004년 초연작 ‘모란정 청춘판’은 곤극하면 주로 떠오르는 중년의 배우가 아닌 10대 위주의 배우들이 출연하면서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이에 자극받은 장쑤성이 곤극 대표배우들이 출연하는 ‘도화선’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곤극에 대한 학계와 대중의 관심은 현재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경극(京劇)

1790년이었다. 화둥 북서부에 위치한 안후이성(安徽省) 극단이 베이징에 입성했다. 건륭황제 80세 생일 잔치를 축하하러 전국에서 모인 전통 극단중에서도 이 극단은 가장 빛난다. 황실의 관심을 등에 업게 된 이들은 아예 베이징에 근거지를 틀고 자신의 공연을 서민앞에서도 무대에 올렸다. 경극은 이렇게 탄생했다.

궁중에서 간택됐지만 경극을 지원해온 세력은 대중이었다.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만 유행하던 곤극과 달리 경극은 쉽게 노래를 불렀고, 경쾌하면서도 스피드가 있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곤극의 약한 고리를 경극은 유효적절하게 타격해 들어가면서 급기야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곤극이 멸종돼 가던 20세 초반엔, 메이란팡(梅蘭芳)이란 당대 최고의 스타가 등장하면서 경극은 더욱 위용을 자랑하게 됐다. “여자보다 더 요염하다”는 평가를 듣던 그는 과거에 얽매이는 경극 연기에 일대 변혁을 가하면서 동시대인의 감성을 파고들었다. 또 일본에 이어 미국 무대도 오르며 ‘경극의 세계화’의 일등공신으로 지금까지도 전설로 남아 있다.

최근엔 ‘햄릿’‘맥베드’ 등 해외 명작을 경극화로 재해석하는 작업이 활발히 진행중이다.

천극(川劇)

중국 남서부 양쯔강 상류에 위치한 쓰촨성(四川省)은 삼국지에서 유비 촉나라의 도읍이 된 천연요새이자 다분히 폐쇄적인 지역이었다. 중국 중앙과의 교류가 활발하기 보단 자신만의 문화 양식을 개발해 발전시켜 나갔다. 무엇보다 서역의 문화를 흡수하기에 좋은 지리적 여건을 갖추어 중국 본토와는 다른 전통 양식을 키워 나갔다.

천극은 이런 지역적 특색속에서 똬리를 틀었다. 똑같은 이야기라도 천극의 탈을 쓰면 훨씬 다이나믹하고 공간 활용도가 높았다. 이는 단순히 노래와 연기에만 머물지 않고 기예와 묘기 등 볼거리를 강조한 장르적 특성 때문이다. ‘변검’은 이런 천극의 가장 대표적인 표현 방식이었다.

지방의 독특한 장르로만 한계 짓던 천극이 전국화의 길로 접어든 건 1952년 중국희곡예술제에 출품된 천극 ‘백사전’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부터다. 뱀과 인간의 사랑을 신분과 계급의 대결, 구습과 근대의 충돌이란 철학으로 승화시킨 이 작품은 고유한 기예가 총망라돼 천극을 새롭게 조명받게 만들었다. 이후 천극은 “기예도 단순히 쇼가 아닌 예술이 될 수 있다”란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월극(越劇)

월극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마오웨이타오가 '양산백과 축영대'에서 남자 양산백을 연기하는 모습.

중국 전통극엔 남성 배우들만 출연해야 한다는 게 하나의 불문율이었다. 예전엔 여성들도 흔히 무대에 올랐지만 음습한 매춘이 횡행하면서 여성 배우의 등장은 금기시 됐다.

경제력이 풍부했던 중국 동부 동중국해 연안에 있는 저장성(浙江省)의 예인들도 처음엔 당연히 남성 배우들로 만든 작품을 갖고 20세기 초반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상하이 공략에 나섰다. 결과는 참패였다. 무언가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지 않고는 안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금기를 깼다. 아예 여성 배우들로만 무대를 꾸며 1920년경 상하이에 다시 입성했다. 월극은 이렇게 탄생했다. 역사가 가장 짧은 전통극인 월극은 그만큼 시대 변화에 빠르게 대처해 나갔다. 서구 연극과 영화 등의 장르적 특성을 수입해 월극화시켰고, 여성 배우만의 섬세한 감정 처리에서도 두각을 보였다. 특히 1950년대 선보인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인 ‘양산백과 축영대’가 월극의 명성을 더욱 높였다. 최근엔 마오웨이타오가 전국적인 스타로 부상하면서 월극의 인기는 더욱 가속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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