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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6자회담을 보고' 특별 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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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핵 문제를 논의한 베이징(北京) 2차 6자회담이 지난달 28일 막을 내렸다. 3차회담 개최와 실무그룹 구성에 합의하는 등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다. 그러나 핵동결과 대북 반대급부를 둘러싼 참가국 간 이견은 여전해 향후 논의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김경원 고려대 석좌교수와 장달중 서울대 교수가 김영희 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의 사회로 29일 긴급좌담을 하고 북핵 해법을 둘러싼 앞으로의 과제와 우리 북핵 외교가 가야 할 길을 진단했다.[편집자]

▶김영희 대기자=6개월 만에 열린 2차 6자회담이 1차 때와는 달리 한반도의 비핵화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의지를 담은 의장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회담을 총평해 주시죠.

▶김경원 교수=평가는 회담에 대한 기대 수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번 회담을 통해 쾌도난마식으로 단번에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긍정적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고농축 우라늄(HEU)핵개발 프로그램 문제나 핵 포기 등 구체적 사안이 성명에 들어 있지는 않지만 실망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달중 교수=당초 획기적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고 전망하지 않았습니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북한과 미국이 밀고당기는 형국이 되지 않겠는가 예상했죠. 다행스러운 것은 회담이 깨지지 않고 대화 채널을 유지한 것과 핵문제로 인한 파국으로 가지 않을 수 있는 장(場)을 만든 것입니다.

▶김영희=실무그룹(working group)을 만들고 올 2분기 안에 3차 회담을 열기로 했는데, 회담이 결렬되지 않고 의장성명이 나온 것으로 6자회담이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틀을 잡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김경원=실무그룹에 합의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과 북한의 입장 차이가 이번에 여실히 드러났음에도 실무그룹을 만들었다는 것은 양측이 다소 신축성을 보일 각오가 돼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죠. 실무그룹을 운영해야 협상이 가능합니다. 두 차례의 6자회담 본회담은 언론의 과도한 관심으로 6개국이 자신들의 입장을 과시하기 위한 쇼였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김영희=베이징 회담에서 한국과 중국의 안을 중심으로 토의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우리 정부는 북핵 논의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상당히 부각하고 있는데 그런 겁니까.

▶장달중=지금까지는 중국이 주도적 역할을 한 게 사실입니다. 북핵 문제가 막힐 때마다 중국은 북한에 가 직접 협의한 뒤 다른 나라들에 안을 제시하곤 하는 패턴이었습니다. 미국도 이런 대목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실무그룹 구성과 6자회담 정례화 등과 관련해 한국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김경원=주도적 역할을 한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역할을 계속할 수 있느냐, 앞으로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일정표)을 제시하고 이를 관철해 나갈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부시 행정부가 대북 강경 입장에 따른 일종의 딜레마에 빠졌다는 사실입니다.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측을 중심으로 부시의 대외정책을 일방주의적이고 적대적이라고 비난하면서 북핵 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하라고 압박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시 진영이 갑자기 대북 유화책으로 선회할 수도 없는 상황 아닙니까. 미국의 입장에서는 대선정국 기간만이라도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김영희=미국은 단순히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 의혹이 불거진 2002년 10월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하는데요. 지금 상황은 그때로 돌아간 겁니까, 아니면 더 앞선 진전이 있는 걸로 봐야 합니까.

▶장달중=그때로 돌아간 것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미국에서는 좀더 진전된 결과가 도출되지 않으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1994년 제네바 핵합의 당시에는 북한의 핵동결이 목적이었다고 본다면 지금은 핵프로그램 폐기가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또 미국 행정부 내에서도 의견이 갈라져 2002년 10월 이전의 상태에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미국 내에서 비교적 진보적이던 사람도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문제가 불거지자 시급한 문제로 취급하는 분위기입니다.

▶김영희=미국이 주장하는 CVID, 완전하고(complete) 검증가능하며(verifiable) 뒤집을 수 없는(irreversible) 핵폐기(dismantlement)와 한.중이 강조한 '모든 핵폐기' 또는 '포괄적 핵폐기'를 상호 조화시킬 방법은 없습니까.

▶김경원=다른 나라도 미국의 CVID에 반대하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북한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문제입니다. 당장 CVID로 북한을 굴복시키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모든 핵폐기'라는 입장이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달중=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우리와 중국.러시아가 거들겠지만 실제 협상의 주체는 결국 미국과 북한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일본도 국내외적인 상황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미국의 입장을 도외시한 채 합의를 끌어내기는 당분간 어려울 겁니다. 미국은 CVID 쪽으로 계속 갈 것으로 봅니다.

▶김영희=의장성명에는 없지만 베이징발 보도를 보면 한국과 중국.러시아는 북한이 핵을 동결하면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미국과 일본은 자신들이 부담하지는 않겠다는 걸로 돼 있습니다. 미국에 비해 한.중.러가 줄 수 있는 것은 한정돼 있고 북한의 기대와 달리 일본도 미국과 보조를 같이하고 있고요. 미국과 일본이 빠진 상황에서 북한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게 가능합니까. 미국은 용인할까요.

▶김경원=미국은 한국이 핵동결 단계에서 에너지를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 이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이 제일 양보한 측면이 이 대목인 것으로 봅니다.

▶장달중=핵폐기를 전제로 한 동결을 선언할 경우 우리가 에너지 제공 부담을 떠안게 됩니다. 미국이 한국 측의 입장을 이해했다곤 하지만 과연 어느 정도의 이해 수준인지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미국의 CVID 정책이 실현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 에너지 제공이 실제로 이뤄질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미국과 조율되지 않은 대북 지원은 외교적 마찰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요.

▶김경원=에너지 지원이 미국의 CVID와 모순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참여하면 6개국 회담에서 합의한 바에 따라 이뤄지는 모양새를 만들 수도 있죠. 우리가 각오해야 할 때가 오고 있습니다. 한반도 상황을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불해야 할 대가를 당당하게 내놓는 문제도 이제 생각해야 합니다.

▶장달중=돈을 내놓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북핵과 남북 공존, 그리고 핵 대치 상태를 해결하는 데 쓰는 것이라면 가치가 있습니다. 다만 미국이 주도적으로 해결해 주던 중유 문제를 이번에 갑자기 한국 측이 부담을 떠안을 경우 국민의 반감이 예상되는 게 문제입니다.

▶김영희=이쯤해서 앞으로 북핵 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풀려갈지를 전망해 봤으면 합니다. 미국은 핵동결과 폐기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리지 않겠다는 입장인데요.

▶김경원=북한은 정말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겁니다. 일단 민주당 케리 후보의 약진 등을 지켜보면서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재집권에 실패할 가능성을 점치고, 북핵 문제를 대통령 선거 이후까지 끄는 게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큰 모험이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북한의 기대와 달리 부시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정말 매운맛을 보여주려 할지 모릅니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다 해도 북핵 문제에서 양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군요.

▶장달중=올해 북한 신문들의 신년 공동사설을 보면 북한이 표방하는 것이 정치.사상과 반제(反帝).군사, 경제.과학 등 3개 부문입니다. 경제.과학을 중시해야 할 시기인데도 반제.군사 같은 낡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부 통치를 위해 내놓은 이슈가 아닐까 합니다. 29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6자회담과 관련한 미국의 태도를 비난하는 회견을 했지만 역시 내부를 겨냥한 듯합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보일 게 확실합니다. 뭐니뭐니 해도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존재는 중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경원=북한 김정일이 어떤 결정을 할지가 키포인트입니다. 그런데 김정일은 외교적 결정과 관련해 종종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있더군요. 미 빌 클린턴 대통령 임기가 끝나가던 2000년 말 북.미 관계개선에 좋은 국면을 맞았지만 미적거리다 조명록 특사를 워싱턴에 보냈지만 이미 너무 늦은 때였습니다. 모든 게 때가 있다는 걸 김정일이 깨달아야 합니다.

▶김영희=4.15 총선도 다가오고 해서 정부 쪽에서는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우리가 주도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부각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텐데요. 한.미공조라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가 과연 베이징 회담에서 나타난 '주도적 역할'이란 대목에 도취해도 되는가 하는 걱정도 됩니다.

▶김경원=진짜 주도적 역할을 했으면 남들이 인정해 주고 평가를 받아야지 자기가 나서 광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북핵 문제가 본격적으로 풀려나가는 국면에서 한반도와 세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하는 겁니다. 한반도 핵문제는 어떤 형태로든 해결될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궁극적인 평화.민주통일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냐를 곱씹어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역할을 일정 부분 평가하고 있지만 과연 그들의 생각이 우리가 원하는 것과 완전히 일치하느냐 하는 것이지요.

▶장달중=북한이 '우리 민족끼리'라는 이른바 민족공조 공세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북핵 한.미 공조와 국내 여론 등을 외교적으로 어떻게 성숙하게 풀어가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과 관련해 납득할 만한 비전이나 정책의 틀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요. 외교 라인의 인적 요소 문제는 그만두고라도 전략적 틀이 부족하다는 얘깁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지나치게 우리의 주도적 역할만 강조하면 자칫 실속없는 '자주외교' 주장만 하는 형국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김영희=정부가 6자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기 이전에 앞으로 우리 외교가 부닥쳐야 할 도전의 파고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는 점도 알고 꼼꼼히 대비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리=이영종.정용수,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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