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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와 세심한 지휘에 악단도 '자기 소리'지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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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오자와 세이지(小澤征爾)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세이지 오자와'라는 금빛 글씨가 아로새겨진 전용 지휘대와 보면대를 사용했다. 그토록 영예로운 자리였건만 연주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지휘대 위에 오르지 않았다. 거듭되는 커튼콜에서도 단원들을 일으켜 세운 다음 그 틈바구니에 서있기만 했다. 평소 즐겨 입던 인민복 스타일의 '패션'도 '권위의 상징'인 지휘봉도 모두 포기했다.

지난달 28~29일 빈필을 이끌고 세종문화회관 재개관 후 첫 무대에 오른 오자와는 자신이 빈필에 봉사하는 '겸손한 종'임을 분명히 했다. 브람스.브루크너.R 슈트라우스 등 '빈 사운드'가 탄생시킨 레퍼토리에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빈 기질'왈츠,'천둥과 번개'폴카(28일), 브람스의'헝가리 춤곡 제1번',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걱정 없어'폴카(29일) 등을 앙코르곡으로 택한 것도 그랬다. 162년간 켜켜이 쌓아온 빈필의 전통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비장의 카드인'루마니아 광시곡'은 물론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고른 것도 다분히 정치적인 배려라면 지나친 상상일까. 곡중 독주를 맡은 클라리넷 수석 주자는 '주식회사 빈필'의 대표이사 격인 페터 슈미틀이었다.

70년 넘게 상임 지휘자를 두지 않고 있는 빈필은 아무에게나 지휘봉을 맡기진 않는다. 오자와도 철저한 준비와 천부적인 암보력(暗譜力)으로 단단히 무장했다. 악보는 아예 들고 나오지도 않았다. 65분간 대하(大河)소설처럼 장대하게 펼쳐낸 브루크너 교향곡 제2번에서도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세밀한 주문을 신호동작에 담아냈다.

하지만 오자와가 빈필을 상대로 펼친 '구애 작전'은 '루마니아 광시곡'을 제외하면 별 효력이 없었다. 브루크너에선 코끝을 간지럽히는 향수같은 음색을 주문해도 성당의 파이프오르간 같은 소리를 냈다. 언제나 그러하듯 무대 위의 주인공은 지휘자가 아니라 빈필이기 때문이다. 온몸과 양팔을 뒤틀다 못해 공중에 열 손가락을 흩뿌리는 신들린 권법(拳法)을 구사했지만 결국엔 빈필이 자발적으로 내는 '영혼의 울림'을 지켜보는 도리 밖에 없었다.

첫날 공연은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2층 '메세나석'에서 관람해 눈길을 끌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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