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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수영화산책>퀴즈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나는 수천만의 시청자를 기만한 위선자입니다.시청률을 높이려는 TV사의 조작극에 협조하여 퀴즈쇼에 출연,정답을 미리 받아거짓지식을 팔았으며 그것이 들통나지 않기를 바라는 한낱 어린아이였습니다.』 대학교수가 청문회에 나가 공개적으로 이런 양심선언을 할 수 있을까.영화니까 가능한 이야기라고 돌려버릴 수도 있겠지만 한때 세인의 관심을 끌었던 국회청문회를 지켜봤던 우리로서는 남달리 감회를 주는 영화다.미국 방송사의 비리와 생리를적나라하게 파헤친『퀴즈쇼』는 실제로 50년대에 있었던 미국 NBS의 인기프로『21』을 둘러싼 스캔들을 바탕으로 한 실화다.
돈과 명성에 빠졌던 한 지식인이 양심을 회복하기까지의 번민과 고뇌가 로버트 레드퍼드감독의 센스있는 제작지휘로 사실성있게 그려져 있다.
지식과 양심을 저울질하는 교과서적인 내용인데도 관객의 마음을사로잡는 영화적 마력이 상당하다.빠른 국면전환,숨가쁜 상황전개,유쾌한 대사로 엮어진 폭력없는 음모가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다.특히 늙은 아버지역 폴 스코필드의 중후한 연기 가 인상적이다.아들이 겪을 치명적인 불명예를 알면서도 지식의 매춘행위를 만천하에 고백하라고 엄격하게 당부하는 모습은 미국판 선비의 풍도를 느끼게 한다.양심선언후 아들이 교수직을 박탈당했다는 소식에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모습에는 가 식없는 모정이 엿보인다.
미국사회가 아무리 범죄와 폭력이 판을 치는 세기말적인 현상을보인다고 해도 이 영화의 주인공 부자와 같은 양심세력이 건재하는 한 희망이 있다 할 것이다.양심선언을 마친 주인공에게 많은사람들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자 이를 문제삼는 한 청문위원의 따끔한 일침이 의미심장하다.
『지식인이 거짓을 밝혔다고 해서 갈채를 보내는 풍토는 곤란하다.』 말인즉 솔직함이 거짓을 호도할 수 없다는 이야기인데,영화는 이 말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는 방청객들 모습에 카메라를 장시간 정지시킴으로써 주인공의 행동에 대한 자체평가를 내리고 있다.아버지와 아들간의 절제있는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밀도있게보여준 할리우드의 수작이다.
편집담당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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