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지 “50개월 기다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1995년 6월 5일. 스무 살의 신예 골키퍼 김병지(38·서울)는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코리아컵 코스타리카전에서 난생처음 A팀(국가대표팀) 골문을 지켰다. 그날 이후 한국 축구대표팀이 치른 경기 수가 그의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 출전 경기 수였다.

그런데 50경기를 넘어갈 무렵부터 조금씩 차이가 났다. 2001년 초 거스 히딩크 감독(현 러시아 대표팀 감독)이 한국에 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이다. 경기 중 골 지역을 벗어났다가 ‘나대는 골키퍼’로 히딩크 눈 밖에 났고 결국 주전 경쟁에서도 밀렸다.

김병지는 자신의 마지막 A매치를 또렷하게 기억했다.

“2002년 11월 20일 브라질과 친선경기였습니다. 호나우디뉴에게 PK(페널티킥) 골을 먹고 패전 골키퍼가 됐죠.”

후반 40분 2-2 상황에서 이운재(수원)와 교체 투입된 그는 경기 종료 직전 호나우디뉴에게 결승골을 내줬다. 그날 이후 그는 영원히 태극마크를 뗐다고 생각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직전 자신의 이름이 월드컵 대표팀 예비명단에 오르자 일말의 기대가 생겼다. 하지만 이운재의 ‘가게무샤’ 자리조차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그가 허정무 감독의 부름을 받고 다시 돌아왔다. 대표팀 골문 앞으로 돌아오기까지 50개월이 걸렸다.

30일 칠레와의 평가전(오후 8시·서울 월드컵경기장)을 하루 앞둔 29일 허정무 감독은 파주 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에서 훈련을 마친 뒤 “다른 선발 명단은 밝힐 수 없지만 골키퍼는 김병지라고 분명히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대표팀에서 떠났던 김병지는 대신 K-리그의 신화가 되어 갔다. 무교체 최다 연속출장(153경기), 한 시즌 최다 무실점 경기(21경기), 통산 최다 무실점 경기(165경기), 통산 최다 경기 출장(465경기) 등 K-리그의 역사를 바꿔 썼다. 명실상부한 K-리그 최고의 골키퍼에게 태극마크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김병지에게 6년 만에 태극마크를 돌려준 허 감독은 자신의 데뷔전까지 맡겼다.

김병지는 “A매치 복귀전을 정말 많이 기다렸다. 글러브를 끼고 있는 동안 모든 열정을 쏟아 붓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파주=장혜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