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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원시인의 힘, 26~2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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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4강전 3국 하이라이트>
○·구 리 9단(중국) ●·박영훈 9단(한국)

장면도(25~34)=단 세 명이 남았다. 그 많은 고수들로 북적거리던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은 이제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준결승 2국에서 극적으로 역전승한 박영훈 9단은 고통 뒤에 찾아온 해일 같은 기쁨 탓인지 에너지로 꽉 찬 듯 보였다. 1대1로 밀린 구리는 심각한 모습이다. 1국에서 완승하고 2국을 파죽지세로 몰아갈 때 그는 숙적 이세돌과 싸울 결승전을 생각했다. 그게 화근이었을까.

운동선수처럼 가슴이 떡 벌어진 구리가 입을 꽉 다문 채 백△로 비스듬히 두어 온다. ‘참고도1’ 흑1로 받으면 백4까지 멋지게 된다. ‘순둥이’ 박영훈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25로 반발한다. 상변의 약한 돌을 그대로 살려 보낼 수는 없기에 반대쪽으로 기대며 공격 타이밍을 잡으려 한다. 여기서 몹시 난폭한 수가 등장했다. 구리가 26으로 치받고 28로 끊어 버린 것이다.

구리는 확실히 상상력이 풍부하다. 프로들조차 깜짝 놀라곤 하는 이런 상상력은 그가 최고수가 될 자질을 지녔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렇더라도 26, 28은 예술적이기보다는 커다란 돌 방망이를 휘두르는 원시인의 힘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29를 선수하고 31, 33으로 돌파하면 어쩌려고… 상변은 다 죽이는가. 아니다. 34로 끊는 기발한 수가 있다. ‘참고도2’ 흑1로 잡아 달라는 수다. 그때 백 2~6까지 도배해 버리면 흑은 일거에 망하게 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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