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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대학교>13.연구소 虛와 實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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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서울대 관악캠퍼스 2동에 있는 독일학 연구소는 이곳이 연구소라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출입문엔 「대학원생 연구실」이라고 쓰여진 조그만 아크릴판이 붙어있을 뿐,연구소 명패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내부에도 책걸상 10여개와 책장 1개가 덩그러니 놓여있고 자료실.컴퓨터.복사기 등 기본적인 시설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이곳이 연구소냐』는 질문에 책을 보고 있던 학생들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전용공간은 물론이고 전담조교도 없는 상태다.학과 조교에게 월 5만원씩 주고 일을 시키고 있다.본부에서 나오는 연구소 지원비라고 해봐야 월 5만원이다.연구할 건 많은데 지원이 턱없이부족해 걱정이다.』 이 연구소를 맡고 있는 송동준(宋東準)교수는 『평소 다른 연구비를 아껴 매년 한번 내는 연구총서 발행비용을 대고 있다』고 말했다.
인문대 소속 연구소 9개중 4곳만 전용공간이 있고 나머지는 독일학 연구소처럼 대학원생실이나 학과 사무실,교수 개인연구실 등에 더부살이 한다.월 10만원 이하의 운영비로 살림을 꾸려나가야 하는 연구소도 상당수다.이는 인문대만의 특수 상황이 아니다. 음대 김성길(金城吉)성악과장이 말하는 오페라 연구소의 운영실태. 『연구소 운영비는 창피해서 밝히기 어려울 정도로 미미하다.연구실과 지도실이 따로 있지만 전담행정요원이 없어 학부생1명이 자원봉사 형식으로 지키고 있다.』 서울대에는 인문.사회계 36개,이공계 42개,예체능계 5개 등 총 83개의 연구소가 있다.외국 유명대에 비해 2~3배 많은 숫자다.
하지만 이공계의 몇몇 대형연구소를 제외하면 규모.시설.운영 등 모든 면에서 교수 스스로 「구멍 가게」라고 부를 만큼 열악한 처지에 있다.
지난해말 서울대에서 자체조사한 연구소 현황을 보면 이런 빈약한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행정요원.조교 등 연구지원 인력을 1백% 확보하고 있는 곳은13개에 불과하고 20개 연구소의 인력 확보율은 아예 제로 상태.연구기자재가 있어야 함에도 전혀 갖추지 않은 연구소가 7곳이며 14곳은 3년간 학술대회를 한 건도 개최하 지 않았다.특히 전체의 20%인 16곳은 연간 한 푼도 연구비를 받지 못한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에서 최근 연간 연구비가 10억원이상인 곳은 천연물과학연구소.반도체공동연구소.신소재공동연구소.농업개발연구소 등 10개.하지만 이중 상당수는 자체연구 기능은 없고 연구비 배분 역할에 그친다.
81년 설립된 자연과학종합연구소에는 실험실이나 연구실이 보이지 않는다.거창한 명칭과 달리 40평 정도의 자료실과 행정실이시설의 전부고 전임 연구원이 한명도 없다.
이 연구소의 역할은「행정 조직」에 가깝다.학과 단위에서 수행할 수 없는 대형 공동연구 센터로서의 역할은 전혀 없고 해외정보 제공,논문 및 출판에 대한 지원,연구비 관리 등을 담당한다.외부 연구비를 받아 이를 자연대 각 학과에 분산 해주는「연구비 창구」 역할이 가장 큰 업무다.실제로 93년 한햇동안 59건의 연구과제에 15억원의 연구비를 받아들여 자연대 교수들에게배분했다.
『이 연구소는 원래 설립 당시 정부나 재단의 연구비를 끌어들이기 위해 설립됐으며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기초과학에 대한투자가 거의 없는 우리의 실정에서 이렇게라도 해야 했다.』 ***연구비 배분 창구 자연대 한 원로 교수는『교수들 사이에서 명실상부한 공동연구의 중심지로 조직을 전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형성돼 있지만 예산지원이 안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대부분 연구소가 학과와 연결돼 있어 기능분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독립적인 기능이 약한 것도 큰 문제.4곳을 제외한 79곳이 전임교수를 한명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연구소가 단과대학이나 학과의 부속기구」라는 분위기가 보편적으로 깔려 있다.
외국 유명대의 경우 대형 연구소 중심으로 학문연구가 진행된다.연구비와 함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결해 그야말로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공간인 것이다.MIT의 링컨연구소,칼테크(CALTECH)의 JP연구소,東京大의 지진연구소처 럼 그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간판 연구소」가 존재하는 것이 공통점이기도 하다.
서울대의 연구소가 재원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난립돼 있음은 東京大와 비교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東京大의 경우 인문.사회계 5개,이공계 8개 등 13개 부설 연구소를 중심으로 연구활동이 이루어진다.연구소마다 연간 연구비가 보통 1백억원 정도다.83개의 연구소를 거느리면서 연구소당 3억~4억원을 쪼개 쓰는 서울대와는 대조적이다.
***엄격한 관리 필요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 서울대의 자체 설문조사 결과는 연구소의 향후 방안을 제시해 준다.
연구소 통폐합에 85.5%가 찬성하고,학문적으로 중요한 분야의 연구소를 선별해 중점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데 77.2%가 동의한다.
대학당국은 그동안 연구소에 대해 적극적인 간섭도,지원도 하지않았다.형식 요건만 갖추면 연구소 설립을 인정해준뒤 스스로 재주껏 운영해 나가라는 식이었다.
서울대가 외국 연구중심대학 수준의 연구소를 갖기 위해서는 엄격한 평가관리라는 「채찍」과,충분한 지원이라는「당근」이 함께 필요하다는 것이 서울대인들의 중론이다.
〈특별취재반〉 ◇도움말 주신 분▲金城吉 서울대 음대교수 ▲宋東準 서울대 인문대교수▲元潤洙 서울대 인문대교수▲白聖基 포항공대교수▲金昭源 서울대 연구지원과장 〈다음회에는「국제화 수준」을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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