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은 忘想에서 벗어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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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北韓)이 판문점(板門店)중립국 감독위원회 폴란드대표단을강압적으로 철수시킴으로써 또 다시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1953년 이래 한반도의 휴전(休戰)상태를 유지해온 기구가 또 하나 무력화(無力化)됨으로써 정전(停戰)체제가 위기에 빠져든 것이다. 현재의 정전체제를 깨뜨리려는 북한의 시도는 이미 1993년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체코대표단을 쫓아내고,지난해에는 군사정전위원회를 유명무실하게 만듦으로써 노골화했다.남한(南韓)을배제한채 미국과의 평화협정협상을 위한 발판을 굳히자는 속셈 때문이다.정전협정을 사실상 사문화(死文化)시키면 미국이 어쩔 수없이 북한 의도대로 끌려올 것이라는 계산이다.북한의 그러한 계산은 그러나 너무나 엄청난 위험을 안고 있다.정전협정의 사문화란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이나 사고가 있을 경우 통제할 수단이 없다는 최악의 경우까지 상정케 한다.
이같은 위험을 아랑곳 않는 극단적인 북한의 행태는 상투적인 벼랑끝 협상책략에 따른 또 하나의 도박이다.그런 책략으로 북한이 몇차례 성과를 거둔 적이 있지만 이번의 경우는 다르다.완전한 허구(虛構)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협정이란 남북한간의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사이좋게 지내자는 이야기다.그런데 북한이 미국과 만나 할 수 있는 이야기란미군의 우발적인 휴전선 월경(越境)문제나 미군 유해송환같은 미국과 관련된 문제가 고작이다.
한반도의 분쟁소지는 북한과 미국간에 있는 것이 아니고,서로 대규모 무력으로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 사이에 있다.한반도 평화의 당사자는 미국이 아니라 남북한인 것이다.
평화체제로 전환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평화를 구축하는 것이다.남북한이 합의하지 않고는 그런 실질적 평화가 불가능하다.따라서 남북한간의 대화를 원치 않는다는 것은 평화를 원치 않는다는것과 마찬가지다.
북한은 아직 남북한의 평화공존 을 바라지 않고 기존의 대남(對南)전략을 고수하고 있다.이처럼 시대착오적인 망상에서 북한이빨리 깨어나야 진정한 평화가 구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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