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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본 미 경제 침체 … 기업 주식 바겐세일로 환부 치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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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 30면

미국 경제가 집값 급락과 신용경색 여파로 침체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다. 이미 침체로 들어섰다는 진단도 나온다. 시장은 이번 경기침체의 양상과 회복 패턴이 어떨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에 침체가 오면 그 기간이 이전보다 길 것이라는 관측이 활발히 제기된다. 경기 하강의 근본 원인이 집값 하락에 있기 때문이다. 노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지난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12개월 정도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딘 베이커 소장은 “주택은 미국 가계의 자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많은 사람의 생계와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며 “이번침체가 과거보다 길고 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침체는 1973년과 81년처럼 16개월 정도까지 진행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평균 경기침체 기간은 10개월이었고,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 시절만 끊어 보면 평균 8개월로 이보다 짧았다. 이번 경기침체의 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고용과 성장률 하강의 정도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착각과 오진

경제가 본격적으로 침체에 빠지면 경제 주체의 고통이 심해진다. 벗어나고싶은 마음 때문에 작은 단서 하나로도 회복을 얘기하곤 한다.

실제 1차 오일 쇼크 이후 가장 심한 경기침체를 겪은 81년 7월 이후 16개월 동안 다우지수는 세 차례나 반등을 시도했다. 미 기업의 설비 투자나 산업생산·고용·소비 등 단기 지표가 일시적으로 개선된 덕분이었다.

이렇게 지표가 호전될 때마다 전문가와 투자자들은 경제가 회복기에 들어갔다는 오진을 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실물 경제는 82년 11월부터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30년 대공황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한 해 전인 10월 폭락한 다우지수가 30년 1~5월 사뭇 가파르게 반등했다. 그해 3월 허버트 후버 당시 대통령은 “위기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의 오판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실물 경제 악화를 선제적으로 대응할 기회를 놓쳐 대공황의 골은 깊어만 갔다.

경제 분석 노하우가 축적된 요즘 심각한 오진 가능성은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적잖은 전문가와 투자자가 판단 착오를 일으킨다.

처방과 소진

미국 정부와 의회는 지난주 국내총생산(GDP)의 1%에 해당하는 15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신속하게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FRB는 30일 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추가 금리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 후퇴기에 흔히 등장하는 재정과 금융 처방이다. 이 중 FRB 기준 금리인하가 중요한 지렛대다. 월스트리트는 FRB가 6월까지 단계적으로 기준금리를 내려 2.25% 수준까지 낮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버냉키가 지난해 상반기 선제적으로 금리를 내리지 않고 나중에 허겁지겁 인하하는 바람에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 금리인하가 미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데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8개월 정도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미 경제는 자체 정화 메커니즘에 따라 상당 기간 거품 시기에 쌓인 부실채권 등 불순물을 제거해 나가는 과정을 거칠 공산이 크다.

계기와 단서

미 경제는 주택시장 호황에 힘입어 2001년 침체에서 신속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린스펀의 공격적인 금리인하와 부시의 세금 감면·환급이 집값 상승과 맞물리며 경기 회복이 극대화됐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지금 주택시장은 끝 모를 침체에 빠져들며 경기침체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금 미 경제는 달러 가치의 약세에 따른 수출 호조 외에는 별다른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딱한 처지에 놓여 있다.

전문가들은 미 경제가 되살아는 모습이 81년 침체 회복 패턴과 비슷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침체로 부실해진 미 기업들의 지분이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쥐고 있던 일본과 독일 투자자에게 대거 넘어갔다. FRB 금리인하와 경기침체로 미 달러화의 가치가 급락한 점도 외국 자본의 미 기업 인수를 부채질했다. 요즘 막대한 달러 자금을 쥐고 있는 중국과 중동 지역 국부펀드들이 서브프라임 사태로 흔들리는 미 금융회사 지분을 사들이는 모습은 그때와 매우 흡사하다.

결국 이번에도 미 기업들은 주식을 외국 투자자에 넘겨주고 받아 온 돈으로 침체의 한파를 견뎌낼 가능성이 크다. 이어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체질 개선 작업을 병행할 것이다. 미 정부는 중국을 더욱 압박해 위안화 절상을 유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80년대 일본과 독일을 압박해 이끌어낸 플라자합의를 통해 엔화와 마르크화 가치를 절상시켜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높여 준 바 있다.

전문가들은 미 경제 특성에 비춰 가장 중요한 회복 단서는 기업들의 설비 투자와 소비심리라고 말하고 있다. 시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경제가 침체 후반기에 들어서면 기업이 서서히 설비 투자와 정규직 고용을 늘리고, 이에 따라 소비심리도 되살아나는 패턴을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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