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문 공화국 … 나훈아 회견으로 본 ‘괴담의 사회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가수 나훈아(본명 최홍기·61)씨가 25일 오전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을 둘러싼 괴소문을 강력히 부인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괴소문은 모두 거짓”이라며 “나는 괜찮지만, 악성 루머에 시달리는 김혜수·김선아 두 배우에 대한 것은 꼭 바로잡아 달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장에는 700여 명의 취재진과 팬클럽 회원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사진=김성룡 기자]

 의혹… 소문… 괴담… 그리고 강한 부인(否認). 신년 벽두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나훈아 괴담’은 주인공의 육성을 통해 전면 부정됐다. 사상 유례없이 빨리 전파되고 또 다양한 버전을 만들어온 괴담인 만큼 후유증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사람들은 왜 그토록 이 괴담에 열광한 것일까.

 #엽기괴담의 절정=연예 스타에게 소문은 필요악, 인기의 증표다. 그러나 사망설·임신설 등에 이르면 얘기가 달라진다. 명예훼손을 넘어 인격적 살인에 가까운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사망설에 시달렸던 변정수씨를 비롯해 고소영· 김태희씨 등이 루머 유포자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며 강경 대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수 조용필씨와의 열애설에 시달렸던 방송인 이금희씨는 나훈아씨의 기자회견이 열린 25일 KBS-1TV ‘생방송 아침마당’에서 “나도 기자회견을 하고 (결백을 입증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나훈아 괴담은 그런 소문 중에서도 최강급이다. 폭력·섹스·미스터리·신체 훼손·복수 등 흥행 요소를 두루 갖춘 엽기의 절정이다. 대표적인 섹시남이자 베일에 싸인 신비한 이미지를 관리해 온 나훈아씨에, 역시 섹스 심벌인 김혜수·김선아씨가 조연으로 등장했다.

 #인터넷 시대 ‘카더라 통신’의 무한 재생산=예전 같으면 면 대 면으로 퍼지던 소문은 인터넷을 통해 급속하게 무한 재생산됐다. 화법은 ‘카더라’, 혹은 주체 없는 인용이다. “우리 언니가 간호사로 일하는 병원에 나훈아가 입원했다더라” “의사인 친척 오빠가 수술에 참여했다고 한다”는 식의 간접인용이 사실의 근거로 등장했다.

 익명성과 ‘퍼뮤니케이션’은 네티즌의 장난이나 가상 시나리오를 사실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홍콩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스타 장궈룽(張國榮) 피살설이 대표적이다. 2003년 호텔에서 투신자살한 장궈룽이 실제는 살해됐고 경찰이 범인을 체포했다는 내용이 소문으로 떠돌다 급기야 일부 신문 등에 실린 것. 그러나 결국은 한 네티즌이 블로그에 올린 창작 시나리오로 밝혀졌다.

 #스타를 보는 대중의 이중심리=대중은 평소 열광하던 스타라도 가혹한 가십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또 그런 소문이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도 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속담이 “남들의 의견에 의존해 자신의 생각을 만들고, 정황상 그럴듯한 개연성을 실체로 쉽게 믿는 한국인의 집단주의적 심리와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소문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소문이 만발하고 소문에 쉽게 현혹되는 한국인의 성향에 대한 일침이다.

 또 사생활이나 도덕성에 집중되는 괴소문들은 스타(권력자)들에 대해 도덕적 우월성을 확인받으려는 대중심리의 반영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 권력관계에서는 힘없는 존재지만 “도덕적으로는 내가 더 깨끗하다”는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집착이 연예 스타의 성적 문란함을 강조하는 괴소문의 확산에 작용한다는 것이다.

글=양성희·강인식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