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학교문턱에 안가도 퀴즈영웅 돼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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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그는 구속됐다. 퀴즈쇼에서 우승한 대가로. 인도 최대의 경제 도시 뭄바이, 그 속에 웅크린 아시아 최대의 빈민가 다라비. 소설 『Q&A』(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문학동네, 456쪽, 1만2000원)는 그 아이러니한 도시의 한가운데서 시작된다.

 18살의 람 모하마드 토머스는 다라비의 여느 소년들처럼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다. 그런 람이 어느 날 퀴즈쇼 ‘누가 십억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에 출연해 10억 루피(인도의 화폐단위)를 딴다. 쇼 제작진은 의무교육조차 받지 못한 람이 우승하자 속임수를 쓴 것이라 의심하고 그를 고발한다.

 이후 책은 람이 열두 개의 퀴즈 문제를 모두 맞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빠른 호흡으로 풀어낸다. 현대 인도 사회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하는 긴장감도 이 책이 지닌 매력이다.

 놀랍게도 이 소설은 저자의 첫 작품이다. 그것도 단 두 달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작가 비카스 스와루프(46·사진)는 현재 주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대사로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에 살고 있다.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한국 독자들이 내 책을 통해 ‘진짜’인도를 느끼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뗐다. 2005년 영어로 발표된 이 소설은 32개 언어로 번역됐고 세계 각국에서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2007년 프랑스 파리도서전에서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책’으로 선정됐고, ‘까칠한’ 서평으로 소문난 뉴욕 타임스마저 “읽는 내내 반전이 끊이지 않아 내려놓을 수 없는 책”이라고 호평했다.

 『Q&A』가 정말 그의 첫 작품인지, 가장 궁금했던 질문부터 던졌다.

  “『Q&A』를 쓰기 시작한 것은 2003년 6월인데 당시 나는 인도 정치고등판무관으로 런던에 머물고 있었다. 임기를 거의 마친 시점이어서 아내와 아이들이 먼저 인도로 돌아갔다. 2개월이라는 시간과 머릿속을 꽉 채운 한 권의 책(아이디어)과 함께 나는 런던에 혼자 남겨졌다. 외로웠지만 덕분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써댔다. 단 이틀 동안 2만 단어를 써내기도 했다.”

 그는 작품의 모티프에 대해 “퀴즈쇼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 미국 ABC 방송의 인기 퀴즈 프로그램)를 보던 중에 이 책의 아이디어가 머리를 후려치듯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그 쇼에서 우승한 영국 육군 소령이 부정행위 혐의를 받는 사건이 터졌다. 방청객 한 명과 공모해 기침 횟수로 답을 알려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영국군 장교가 될 만큼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 의심받는다면 어떤 도전자라도 의심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에 퀴즈는 지식보다 기억력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뿐만 아니라 많은 요인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퀴즈쇼 출연자, ‘책’으로부터 얻은 지식은 전무해도 ‘거리’에서 얻은 지식은 풍부한 출연자를 떠올렸다. 그렇게 이 책이 탄생했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퀴즈쇼에서 출제된 문제와 출생부터 18세에 이르기까지 람의 일생 사이를 잇는 우연한 연결고리를 회상하는 구조로 돼 있다.

 작가는 “독특한 구조가 이 책의 힘”이라며 “쉬운 문제부터 차츰 난이도가 높아지고, 문제의 주제도 계속 바뀌는 퀴즈쇼의 구성과 주인공의 에피소드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말미에서 람은 내내 지니고 다니던 ‘행운의 동전’을 바다에 던져버린다. “소설 속에서 동전은 행운의 상징입니다. 마지막 순간 람은 ‘행운은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하고 동전을 던지죠. 더 이상 그에게 행운의 의지물 따위는 필요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행운이란 것도 결국 스스로 창조해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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