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는 한숨 쉬고, 학원은 무릎 치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영어 말하기·쓰기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요.”(서울 목일중 2년 양모양)“학원은 만세입니다. 교사들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서울 H어학원 원장)

 “가슴이 꽉 막혔어요. 초등 6년생 둘째도 연수를 보내야 할지….”(40대 기러기 아빠 박모씨)

 새 정부의 영어교육 개편 방안이 일선 교육현장에 큰 파문이 되고 있다. 올해 중2가 대입을 치르는 2013학년도부터 수능 영어시험을 영어능력평가시험으로 대체하면 영어 공교육 체계 전반을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5지 선다형 수능 영어시험 대신 토플 형태의 듣기·말하기·읽기·쓰기 능력을 평가하게 되면 학생의 부담이 늘고 일선 교사의 실력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13일 인수위 업무보고 자리에서 “학부모들이 ‘바로 이거다’라고 무릎을 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교육정책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영어 수능 제외가 발표된 바로 다음 날인 23일 현장의 반응은 거꾸로였다. 영어 사교육업체들은 “학생들이 몰려올 것”이라며 무릎을 쳤고, 학부모들은 “등골이 더 빠지는 것 아니냐”며 답답해했다.

 한 해 30조원이 넘는 전체 사교육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영어 과외비를 반으로 줄이겠다는 이명박 당선인의 공약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인수위는 섣부른 정책이란 지적과 함께 교육현장이 술렁이자 급히 수습책을 내놓는 등 진화에 나섰다. 이주호 사회교육문화분과 간사는 23일 “영어시험을 2, 3번으로 제한하거나 여러 번 치르면 감점 하겠다” “법으로 본고사 부활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이 간사의 발언에 “급하게 내놓은 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해 또 다른 규제를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부모 울고, 사교육 환호=이날 영어 사교육 업체들의 주가는 대부분 급등했다. 영어학원 프랜차이즈 에듀박스와 영어 테이프·교재 제작업체 능률교육, 초·중·고 학원 디지털대성은 전날보다 14% 이상 올라 상한가로 마감했다. 대형 입시업체의 한 관계자는 “목표와 방향이 어찌됐든 대입 제도가 바뀌면 사교육 업체가 혜택을 볼 수밖에 없다”며 “공교육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장인철 청담어학원 대표원장은 “지난 5년간 학원생이 3000여 명에서 3만5000여 명으로 10배 이상 늘었다”며 “수능 과목 축소로 오히려 사교육이 영어에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반겼다.

 올해 중2가 되는 김모양은 “친구들을 만나 보니 다들 큰일 났다며 걱정했다”고 말했다. 김양은 “학교에선 영어 말하기나 쓰기 시험을 본 적이 없다”며 “토플 학원 같은 데를 다녀야 하는 것이냐”고 말했다. 학부모 김순옥(41·여)씨는 “회화 위주로 영어를 평가한다니 조기유학이 늘지 않을까 싶다”며 “학교를 믿기도 어렵고 학원을 더 보내는 것도 부담이다”고 걱정했다. 반면 2006년에 자녀를 캐나다로 조기유학을 보냈다는 곽현희(47·여)씨는 “아이를 보내길 잘했다”고 말했다. 어차피 한국에 있어도 영어 사교육비가 엄청 드는데 영어 평가방식이 바뀐다니 다행이라는 것이다.

 ◇영어교사들 “어찌할까요”=임형근 현대고 교사(영어)는 “실용영어 중심으로 간다는 기본적 방향은 나쁘지 않다”며 “그러나 회화 위주 수업에 교사들이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한국교육개발원 조사 결과 ‘영어로 주당 1시간 이상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밝힌 영어교사는 절반도 안 됐다.

 고3 교실에서 영어수업이 파행될 가능성도 있다. 고3이 되기 전 영어평가시험을 통과한 뒤에 나머지 수능 과목과 대학별 고사에 집중하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배노필·백일현 기자

[J-HOT]

▶ 이명박 당선인 "KBS서 버젓이 주부탈선 프로라니"

▶ '미수다' 미녀들 "소원이던 카드 드디어 만들었어요"

▶ '1등 신랑감' 홍콩 인민해방군 "괴로워" 이유는

▶ 라흐마니노프 ‘폭풍 연주’ 90분 숨죽이던 객석이 흐느꼈다

▶ 동서로 5200km 뻗어있는 중국 시차 왜 없을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