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립식 펀드, 올해는 빛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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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21일 은행과 증권회사 펀드 판매창구에는 고객 문의가 빗발쳤다.

코스피지수가 1700 아래로 밀린 데다 중국·홍콩 증시도 급락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지난해 10월 중국펀드에 가입했다는 김하선(37)씨는 “동료 말만 믿고 가입했다가 벌써 원금만 30% 가까이 까먹었다”며 “지금이라도 환매를 하는 게 나은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나 펀드 전문가들은 “펀드투자는 긴 안목으로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동부자산운용 이좌근 주식운용본부장은 “펀드투자는 주가가 오를 때 투자금을 줄이고 주가가 떨어질 때 오히려 투자금을 늘려야 전체 매수단가를 낮출 수 있어 성공 확률이 크다”고 강조했다. 특히 적립식 펀드에 가입한 사람은 시장이 오를 때보다 내릴 때가 투자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수를 뒤쫓아간 펀드투자=지난해 중국펀드로 들어온 돈은 중국 증시가 정점에 도달했을 때 가장 많았다. 국내 출시된 중국펀드는 주로 상하이 H주에 투자한다. H주 지수는 지난해 10월 말 2만 포인트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해외펀드 설정액도 지난해 10월 7조5000억원으로 가장 많이 늘었다. 하지만 10월 이후 H주 지수는 상승세가 꺾여 현재 1만3500선까지 밀린 상태다. 당시 중국펀드에 돈을 넣은 투자자는 대부분 원금을 까먹었다는 얘기다.

국내 주식형 펀드도 비슷하다. 지난해 5월 이후 지수대별로 유입된 자금을 보면 코스피지수 1700 미만에서 들어온 돈은 1조원이 채 안 된다. 반면 1700 이상에서 유입된 돈은 43조원(재투자분 포함) 가까운 규모다. 이날 1700 선 아래로 밀린 것을 감안하면 지난해 국내 주식형 펀드에 가입한 사람도 상당수가 원금을 손해 본 상태다.

◇대량 환매 가능성은 낮아=과거 국내 증시가 ‘냄비 현상’을 보인 데는 주식형 펀드의 쏠림이 한몫했다. 예컨대 ‘바이 코리아’ 바람이 불었던 2002년에도 코스피지수가 800선에 이를 때까지는 주식형 펀드로 돈이 유입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수가 800선을 넘자 한꺼번에 38조원이 넘는 돈이 주식형 펀드로 쏟아졌다. 하지만 지수는 1095를 고점으로 꺾였고, 당시 주식형 펀드에 가입한 사람은 투자한 지 한두 달 만에 원금을 까먹었다. 그러자 대량 환매사태가 벌어졌고 그게 다시 주가 하락을 부채질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그러나 2003년 이후 상승장에서 주식형 펀드로 몰린 돈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다. 적립식 펀드가 히트를 치면서 돈을 한꺼번에 몰아 넣기보다 적금처럼 장기간 조금씩 나눠 투자한 사람이 많아졌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연구위원은 “지난해는 투자금의 쏠림 현상이 나타났으나 2003년 이후 시장을 보면 적립식 펀드로 들어온 돈이 바닥을 단단하게 받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주가가 빠지는데도 주식형 펀드로 돈이 계속 들어오고 있는 것도 이런 효과를 노린 자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적립식 투자 고려할 때=적립식 투자는 주가가 오를 때보다 떨어질 때 힘을 발휘한다. 오르는 장에서는 돈을 한번에 몰아넣어야 수익률이 극대화되지만 떨어질 때는 분산 투자해야 매수단가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적립식 투자는 3년 이상으로 기간을 늘리면 수익률에도 큰 편차가 없어진다. 삼성증권의 시뮬레이션 결과 3년 이상 적립식으로 투자할 경우 어떤 시점에 투자해도 수익률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삼성증권 신상근 연구원은 “길게 보면 시장의 고점과 저점을 예측해 돈을 한꺼번에 몰아 넣는 것보다 꾸준한 분산 투자가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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