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카슈랑스 전쟁 MB는 누구 손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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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 “규제를 풀어 금융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새 정부의 기본방침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이다.” 21일 오전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회관. 강정원 국민은행장 등 15개 은행 대표가 이른 아침부터 모였다. 정치권에서 4단계 방카슈랑스 도입을 연기하려 하자 긴급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은행장들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은행협의 성명서를 전달 했다.

#2 “보험설계사와 대리점, 이들 가족을 포함해 120만 명의 생계가 위협받는다. 새 정부의 서민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에도 역행한다.”
 은행장들의 성명서가 나오자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는 즉각 반박 입장을 발표했다. 보험사 사장들은 23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은행권에 대한 대응전략을 논의할 예정이다.

은행권과 보험업계가 보험의 판매영역을 놓고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다. 은행 창구에서 자동차보험과 종신보험까지 팔 수 있는 방카슈랑스 4단계 확대 시행을 둘러싸고 두 금융권의 이해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양측이 들고 나온 논리적 근거는 같다. 바로 ‘규제 완화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신정부의 경제철학이다. 이 중 은행쪽이 ‘규제 완화’에 무게를 뒀다면, 보험업계는 ‘일자리’를 강조하고 있다는 게 차이다. 대통령 당선인의 ‘MB노믹스’가 방카슈랑스 논란을 계기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2003년 첫 도입된 방카슈랑스는 그간 상당한 곡절을 겪었다. 당초 4단계 시행을 2005년 4월로 예정했지만 보험업계의 반발로 3년을 늦췄다. 그 기한이 올 4월이다.
 
핵심 쟁점은 결국 ‘산업 활성화냐, 일자리냐’로 모아진다. 보험업계는 설계사들의 주업무까지 은행이 취급할 경우 생보·손보를 통틀어 최대 14만 명(일부 학자는 8만 명)의 설계사가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은행권은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장기적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더 생길 것이라고 반박한다.

데이비드 에드워즈 SC제일은행장은 21일 회의에서 “디레귤레이션(deregulation·규제완화)이 결국 일자리를 만든다. 런던이나 싱가포르를 보면 알지 않느냐”고 말했다.

양측의 논란은 ‘소비자 편익’보다는 업계 이익을 놓고 밀고 당기는 힘겨루기로 변하고 있다.

나성린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장의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대원칙 아래 타이밍을 조정해 과도기적 부작용을 줄여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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