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상>세계은행의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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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해 「50고개」를 구설속에 넘긴 세계은행에 바람 잘 날이없다.창설 반세기잔치는 「50으로 족하다」는 비판여론의 「사형선고」로 크게 얼룩이 졌다.거듭 태어나는 몸부림이 시작될 무렵루이스 프레스턴 총재마저 암(癌)으로 도중하차 했다.「스태프들의 급료가 너무 많고 조직이 비대하다」는 여론에 부대껴 2년내12%의 추가감원을 공약해 놓은 처지다.
세계은행의 현 자본금은 1천9백억달러,대출자산은 1천1백억달러다.지난 50년간 축적된 내부유보액만 1백40억달러다.지금도세계에서 가장 건실한 「은행」이다.
돈장사는 가위 「땅짚고 헤엄치기」다.각국이 출자하는 자본금은「공짜」다.배당의무가 없다.대출재원은 공채를 팔아 충당한다.주주인 주요국 정부들이 공채인수에 보증을 선다.신용등급은 항상 「AAA」(최고등급)다.
50년동안 6천여건의 대출중 부실대출은 단 한건도 없다.세계은행 돈을 안갚으면 국제사회에서 돈을 빌릴 수 없다.개발도상국들간에 「채무감옥」으로까지 불린다.대출이 많을수록 이윤도 많아진다.50년동안 자본금은 19배,인원은 1천5백74명에서 5천2백1명,연 간예산은 5천만달러에서 4억5천만달러로 늘어났다.
문제는 덩치보다 그 시대적 역할과 기능이다.
세계은행은 유럽의 전후(戰後)복구를 위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으로 출발했다.유럽의 복구가 끝나면서 개발도상국으로 고객이 바뀌었다.68년 로버트 맥나마라총재의 「제3세계 빈곤과의전쟁」선언으로 세계은행은 다시 태어났다.
오늘의 「개발경제학」 역시 세계은행이 그 산실이다.도로.댐.
항만.발전소 건설을 도와 「빈곤의 악순환」에서 개도국들을 「도약」시킨 공로는 지대하다.반면 냉전(冷戰)시절 미국이익에 우호적인 독재정권을 비호해 부패를 조장했고,분별없는 프로젝트로 투자의 부실화와 환경을 파괴했다는 지적도 따갑다.
관료조직의 「오만」과 함께 「시장개입적」인 세계은행의 개발철학도 도마에 올라있다.국민의 세금을 융자재원으로 더 이상 내지말자는 여론도 빗발친다.전례없는「자기정립의 위기」(identity crisis)다.
새 총재 역시 미국 「몫」이다.국제통화기금(IMF)총재는 유럽인,세계은행총재는 미국인이 「관례」다.기구와 인원을 줄이고,교육. 보건.환경등 사회부문에 중점 융자하고,민간부문 발전을 도와 융자사업의 질을 높여 그 존립을 다시금 인정 받으려 한다.연봉 19만달러에 수당 9만달러의 총재직,「제3세계에 군림하는 지엄한 전주(錢主)」는 어느새 「가시방석」이다.
〈本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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