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새로운 지도자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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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인류는 지금 엄청난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인간의 인식능력이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고말았다.삼척동자라도 세상의 변화를 느끼고 있지만 어떤 위대한 사상가도 그 변화의 방향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말 할 수 없다.
이처럼 우리는 겉잡을 수 없는 세계사의 변화와 한반도의 불확실한 통일전망속에서 살고 있으며 중심이 잡혀있지 않은 국내정국이걱정스럽기만 하다.
앞으로 3년안에 우리는 지방자치단체장.국회의원.대통령順으로 21세기를 짊어지고 나갈 우리의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정당을 이끌어나가는 사람이나 각급 정치지망생들은 저마다 그들이 가진 정치적 자원을 총동원해 나갈 것이다.그렇다면 우리 유권자들은 어떤 지도자들을 눈여겨 봐야할 것인가.어떤 사람은 경륜을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 을 주장한다.행정능력이나 전문지식,도덕성도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막스 베버가 말한 정치가의 3대조건,즉 정열.책임감.직관은 이미 현대의 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충분조건이 되기에는 너무 모호하다.여기서 우리가 따져야 할 것은 바로 정열과 경험과 지식의 내용이다.다시말하면 무엇에 대한 정열,무엇에 대한 경험,무엇에 대한 지식인지가 중요하다.그「무엇」이 바로 세계사의 방향과 우리 민족의 시운(時運=national time)을 선취(先取)하는 일이다.
우리는 편의상 21세기를 향한 역사의 방향을 다음 네가지로 파악할 수 있다.첫째는 자본주의의 세계화다.정부가 내세우는 세계화도 결국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세계화를 바탕에 깔고 있다.
세계가 전면적으로 하나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조직 된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그런 의미에서「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역사의 시작」이라 말할 수도 있다.
둘째는 민족주의의 보편화다.서구(西歐)에서 시작된 민족주의가제2차 세계대전후 反서구적 민족주의로 제3세계에 확산됐고 냉전체제의 붕괴와 함께 자본과 기술의 국제화에서 소외된 주변국가들이 민족의 평등을 외치며 무력투쟁을 불사하고 있 다.이처럼 민족주의는 근대이래 제국주의와 反제국주의의 구도로 전개돼오다 이제는 민족의 자기주장이란 점에서 전세계의 보편적 현상이 되고 있다. 셋째,민주주의의 지구적 확산이다.근대적인 의미의 민주주의는 서구에서 출발해 反민주세력과의 오랜 대립 속에서 성장해 왔다.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시즘 추축국(樞軸國)이 패망했고,1989년 소련의 국가사회주의체제가 붕괴함으로써 민주주의 는 정치적 정통성의 유일한 원리로 자리를 잡았다.더욱이 1980년대권위주의 국가들의 민주화운동은 민주주의의 지구화 현상을 가속화했으며 지금은 서구든,非서구든 간에 민주주의 그 자체를 부정하는 나라는 없다.이 또한 역사상 미증유의 일이다.
넷째,지방화를 들지 않을 수 없다.동서냉전의 붕괴와 함께 세계를 획일적으로 조직했던 이데올로기의 역할이 퇴색하고 제도와 삶의 방식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지구화함에 따라 각 지방의 개성과토양에 맞는 자율적인 삶을 영위하려는 운동이 신 선한 충격으로등장하고 있다.지방화는 민주화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반드시 겪게될 인간의 정치적 실험이 될 것이다.
한국은 非서구국가로서 제국주의의 경험없이 세계화.민족화.민주화,그리고 지방화를 총체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지구상 유일한 국가다.따라서 앞으로 한국의 각급 정치지도자들은 이 네가지 역사적 추세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한 국은 이미 자본주의의 세계화에 편승하고 있지만 통일한국의 달성이라는 민족주의의 목표에서 새로운 활로와 생명력을 찾을 수도 있다.우리는지금 민주주의에의 전환기에서 정착기로 이행하고 있다.지방화는 민주화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지방정치시 대는 우여곡절이 있겠지만거역할 수 없는 대세다.
***국민統合 철학 가져야 이렇게 봤을 때 우리는 위의 네가지 흐름과 원리에 대해 납득할 만한 지식과 경험.정열을 가지고있는 인물을 지도자로 뽑아야 할 것이다.지방단체장은 위의 네가지 흐름을 지방화시대에 맞춰 민초(民草)들의 일상적 삶에 철저히 봉사할 수 있는 일꾼이어야 하고,국회의원은 네가지 추세를 각종 의정활동을 통해 중앙정부의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역량있는 인물이어야 한다.우리가 1997년에 선택할 대통령은 위의 네가지 역사적 변화를 수용하면서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확고한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정치지도자의 質이 유권자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高大교수.韓國평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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