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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왠지 연옥은 신이 나있었다.
『민생한의원이 어딨는지 어떻게 알았니?』 「나체 총각」은 이웃 한약방 아주머니의 친정 동생이었다.3대째 한의사인 남편이 돌아가자 그녀는 동생 큰아들에게 한의학 공부를 시켜 약방을 이어받게 했다.아들 중에 한의학을 전공하려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후 강남에 한의원을 차려 이사갔다는 소문은 들었으나,그병원이 어디에 있는지 길례는 몰랐다.생각해보니 참 무심한 일이었다. 『필목점 아주머니께 여쭤 봤어요.』 필목점은 대장간을 헐어서 지은 길례네 세가(貰家)다.그러니 필목점 여장부라면 이사간 한의원을 모를리없다.
빈틈 없는 아이다.
『그래,발은 좀 어때요?』 냉전중이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괜찮아.』 여전히 무쪽 자르듯한다.
해야 할 말은 또 한가지 있었다.
연옥의 혼사 문제다.
『조건은 좋아보이는군.』 뜻밖에도 순순한 호응을 보였다.
그는 대뜸 연옥을 불러 만나보라고 권유한다.
『글쎄요.』 얼굴 사진을 점검하며 연옥은 남의 일같이 선대답을 했다.
『남자 친구 하나 사귄다 생각하고 가벼운 기분으로 만나봐.이정도 친구라면 알아둬서 나쁠 건 없어.』 남편 계산의 속셈이 어디에 있는지 길례는 얼른 가늠할 수 없었다.어떻든 좋다니까 만나게 해볼 일이다.
『맞선 보는 날 식사하면 안 좋다나봐요.차나 마시기로 하죠.
』 아리영의 주선으로 경복궁 앞의 「분위기 있다」는 다방이 만남자리로 정해졌다.
길례는 환한 초록색 슈트를 입히고 싶었지만 딸이 듣지 않았다.평소에 입던 베이지색 앙상블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나섰다.도무지 맞선 보러가는 처녀같지 않다.
아리영의 시동생은 청회색 양복을 깔끔히 입고 나왔다.파스텔 조의 넥타이도 반듯하게 매고 있다.아리영이 챙긴 매무시가 분명하다.딸을 챙기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김해(金海) 허(許)씨는 매력적인 조상님을 두셨습니다.』 청년은 능변이었다.
『김해 허씨의 시조(始祖)는 가락국(駕洛國)김수로(金首露)왕의 허황옥(許黃玉)왕비 아닙니까.여성으로 한 성씨(姓氏)의 시조가 된 분은 아마 이 허왕비뿐일 겁니다.인도 아유타국(阿踰타國)공주였으니까 국제결혼이지요.김수로왕도 상당히 국제감각이 있는 남자였나봐요.』 『세계화돼 있었나보죠.』 방금 만난 맞선둥이 같지 않게 큰소리로 마주 웃고 있는 젊은이를 두고 길례와 아리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린 퇴장할테니 재미있게들 얘기나누다 와요.』 경복궁 담길은 겨울같지 않게 따사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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