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긴급생계비는 빨리 풀라고 만든 것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태안 기름 유출 피해 어민들에 대한 생계비 지원을 놓고 해양수산부와 지자체들이 보이는 행태를 보면 정말이지 분통이 터진다.

생활고를 비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어민들이 속출하는데 국제기준 맞추고 피해 규모 파악하느라 금쪽같은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사건 발생 9일 만인 지난달 16일 해양부는 “긴급생계지원비 300억원을 피해 지역에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충남도에 돈이 전달된 것은 28일이었다고 한다. 지원금의 성격이 위로금이냐, 아니면 보상금이냐를 놓고 충남도와 해양부가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10여 일이 지난 것이다.

피해를 보상해 줄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에 유권해석을 받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게 충남도 관계자의 변이다.

돈을 받고도 충남도는 즉시 집행하지 못했다. 태안군 등 6개 피해 시·군이 지원금 규모를 놓고 시비를 계속했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44일이 지난 어제야 충남도는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 지원금에 국민 성금 일부와 도 특별예산을 합쳐 모두 558억원을 피해 시·도에 21일 지원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돈이 어민들에게 언제 주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피해 시·군들이 아직 구체적인 자금 안배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완구 충남지사조차 “피해 규모 등이 정확히 가려져 있지 않아 혼란이 예상된다”며 “3~4일 안에 피해 어민들에게 지원되기를 기대한다”고 토로했다.

긴급생계비는 재난에 빠진 이들에게 국가가 무상 지원하는 최소한의 생계자금이다. 그런 만큼 집행시간이 생명이다.

피해 어민들의 자살이 이어지고 있는 판국에 언제까지 돈을 깔고앉아 집행 기준만 다듬고 있으려 하는가. 피해 지자체들은 도로부터 자금을 받는 즉시 일단 구호작업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합리적인 구제 기준을 만들어 정산하면 된다. 2002년 대규모 기름 유출 사건을 겪은 스페인이 그랬다. 스페인 정부는 국제기금 배상한도액을 넘는 선급금을 피해 주민들에게 우선 지급하고 나중에 구상을 받는 방식으로 사태를 수습했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