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 강조하는 인수위 새 풍경 … 읍소·협박·애교 넘나드는 문자메시지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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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내용을 문자메시지로 보내 달라.”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이 최근 기자들에게 사석에서 한 요청이다. 그는 하루 수백 통의 전화 공세에 시달린다. 통화가 될 때까지 수십 번 걸려오는 경우도 있다. 이날 요청은 자신이 한두 차례 전화를 못 받을 경우 아예 문자메시지를 보내 달라는 얘기였다. 전화를 되걸 때 곧바로 용건을 얘기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주 대변인만 해도 기자를 상대하는 게 ‘업무’라 전화 연결이 잘 되는 편이다.

다른 인수위원이나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그렇지 않다. 수차례 전화해도 응답 없기가 다반사다. 아예 휴대전화기를 꺼놓은 경우도 많다. 새 정부 인선과 정부조직 개편안 등 굵직굵직한 사안을 다루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이 당선인이 보안을 강조하는 탓도 있다.

전화 통화 성공률이 확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수위 주변에선 ‘대안 소통방식’으로 떠오른 게 문자메시지다. 간단한 사실을 확인하거나 통화를 요청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 물론 답변 여부는 전적으로 받는 사람에게 달렸다. 이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다양한 표현이 동원되곤 한다. 인수위의 새 풍속도다.

①읍소형=기자들이 보내는 문자메시지는 읍소형인 경우가 많다. “제발 전화 좀 받아주세요” “이러실 수 있어요” “그간 (인사) 진도 나간 게 있어요. (눈물이) 그렁그렁” “저랑 인연을 끊으시려는군요”라는 식이다.

이명박 당선인 측근들도 “못 받는 처지를 이해해 달라”고 답신하곤 한다. “목소리가 없어요. 당분간”이라거나 “나는 전혀 아는 게 없어요”란 표현도 등장한다. 수위를 좀 더 높여 “전화 못 받는 불쌍한 인간을 너그럽게 봐주세요” “죄송합니다. (전화를 받지 못하는) 이 업보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용서 바랍니다”고 한 사람도 있다.

②애교스러운 협박형=다소 공격적인 문자메시지가 오갈 때도 있다. 워낙 통화가 안 되는 경우다. 측근들이 향후 출마 등 정치적 행보에 들어갈 것을 염두에 두고 “인수위에만 계속 있을 거요” “총선 나오면 보자”란 메시지를 던지는 식이다. “지금 관련 인물 기사를 쓰고 있다”는 ‘암시적’ 협박 케이스도 있다.

측근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우리가 왜 전화를 받아야 하지” “그간 해준 게 뭐 있다고”라고 받아치곤 한다.

③카피라이트형=기발한 내용으로 눈길 끌기를 시도하기도 한다. 눈이 내린 날 “눈이 녹고 있습니다. (취재를 못 해) 애간장도 녹고 있습니다”는 감성 코드, 오랫동안 통화를 못 했을 경우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그나마 목소리가 가장 나은데” “은쟁반에 쇠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를 들려 주세요”라는 유머 코드를 섞은 케이스다. 회신율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④용건형=문자메시지를 통해 실질적인 취재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가 총리 후보인가”라고 묻자 “아닌 듯하다”고 답하는 식이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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