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지키는 문화살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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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 08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 아무도 뵈지 않는 암흑 속에서, 조그만 읊조림은 커다란 빛….”

전시·공연 아우르는 인문예술서점 ‘이음아트’

서점에 들어선 순간 고(故) 김광석의 낭랑한 노랫소리가 귀를 붙든다. 12년 전 세상과 결별한 사람이건만 눈앞에서 부르는 양 생생하다. 아마도 입구에서부터 서가 구석구석을 메운 흑백사진 40여 장 때문이리라. 쓸쓸한 듯, 약간은 수줍은 듯 통기타를 안고 노래하는 모습은 사진작가 임종진씨가 한겨레신문 기자 시절부터 찍었던 작품이다. 복합문화공간을 꿈꾸는 서점 ‘이음아트’는 2008년을 이렇게 ‘광석이형 미공개사진전’(2월 9일까지)과 함께 열었다.

한국 공연의 메카 대학로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이음아트’는 별난 서점이다. 일단 다루는 신간이 인문·예술·교양서 위주다. 인문학의 위기가 더 이상 뉴스도 아닌 시점에 ‘돈 안 되는’ 책만 들여놓은 셈이다. 특히 공연·사진 관련 책이 많다. 대학로라는 입지에 충실한 컬렉션이다. 한쪽엔 헌책과 재고도서가 쌓여 있다. 1980년대 대학가 서점에서 각광받다 이젠 퇴물 신세가 된 사회과학·역사책이 여기선 아직도 대접받는다. 둥근 탁자와 함께 비치된 의자들이 쉬엄쉬엄 책 읽으며 쉬어가라는 ‘인심’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건 서점 너머를 지향하는 기획활동들. 지난해엔 매달 셋째 토요일 특별한 공연이 열렸다. 드림플레이가 제작하고 김재엽씨가 연출한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가 무료로 관객을 맞은 것이다. 서점 ‘오늘의 책’을 배경으로 한 연극이라 공간적으로 잘 어울리기도 했지만,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버티기 힘든 21세기 한국 상황이 배경에 있다. 김 연출가는 “공연문화의 요람이라 할 대학로에서 이런 서점 하나는 지켜줘야겠다 싶어 공연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갤러리가 아닌 서점에서 관객을 맞은 ‘광석이형 추모사진전’도 비슷한 맥락이다. 워낙 소박했던 가객 김광석에게 서점이란 공간이 잘 어울리기도 하거니와 ‘이음아트라는 좋은 공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한다’는 임 작가의 의지가 더해져 마련됐다. 이 밖에 부정기적으로 열리는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조병준·강영숙·편혜영·신현림씨 등이 독자들과 만났고, 최창근 극작가의 주도하에 ‘희곡 낭송 모임’이 열리기도 했다. 문화인들의 거점이자 살롱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05년 10월 ‘이음아트’를 연 한상준(46) 대표는 “이 같은 응원이 있으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넘어서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책이 좋았어요. 그런 책이 널리 읽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서점을 연 건데, 이렇게 사람들과 맺어지고 소통하는 네트워크까지 생길 줄은 상상도 못 했죠.” ‘이음아트’가 닮고 싶은 모델은 일본 도쿄 진보초(神保町)의 고서점 거리에 위치한 ‘일성당’. “3대째 내려오는, 문을 연 지 백 년이 넘은 서점인데 참 부럽더라고요. ‘이음아트’도 아껴주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백 년 아니라 천 년은 가야 할 텐데, 그럴 수 있을까요. 허허.”

찾아가는 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에서 동숭아트센터 방향 30m쯤 걷다 왼쪽 지하. 02-745-9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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