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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칼럼] ‘자율화’ 앞두고 멈칫하는 대학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5호 10면

많은 대학이 평소 3불(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정책과 논술 가이드라인 등이 없어져 자율적인 학생 선발이 가능하게 되면 입시 문제는 다 해결될 것처럼 얘기해왔다. 하지만 자율화의 물결이 일고 있는 지금, 입시안을 소신 있게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대학은 하나도 없다. 다들 2월 초 인수위의 대입 관련 정책 결정을 지켜본 뒤 3~4월에 2009학년도 대입 계획을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대다수 대학은 수능의 변별력을 되살리는 방향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수능등급제가 폐지될 경우 정시논술을 없애겠다는 대학들도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학력 외에 창의성 등을 평가할 구체적인 보완책을 함께 내놓은 대학은 없다. 그동안 과연 입시 자율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연구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아니면 색다른 입시 기준을 내놓을 경우 학생들을 경쟁 대학에 뺏길까 봐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성균관대 성재호 입학처장은 “대학들이 그동안 교육부에 의존해온 관성 탓에 스스로의 계획과 실천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조전혁 인수위 자문교수(인천대·경제학)는 “대학들의 요구가 수능등급제를 폐지하고, 수능이 변별력을 갖출 수 있도록 어렵게 문제를 출제해 달라는 데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이 자율화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수능에 초점을 맞추면서 ‘자율’을 정책 당국에 떠넘기는 모양새다. 그는 “이에 따라 수능 심화 과정을 개설하기 위해 교육 과정을 개편하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당선인은 자율화를 앞세우면서도 “연세대 경영대가 논술을 보지 않아 대박이 났다” “자율권을 넘겨도 대학이 본고사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같은 말로 대학의 자율권을 은근히 압박하고 있다. 일부 대학이 보완책에 대한 아무런 언급 없이 ‘논술 포기’를 선언하는 것을 보고 인수위의 한 자문교수는 “시나리오대로 대학들이 움직여줘 고마운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 63년 동안 입시정책은 수능등급제까지 포함해 크게 14번 변했다. 4년에 한 번꼴로 바뀌어 ‘입시 올림픽’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학생과 학부모들을 갈팡질팡하게 했던, 획일성만 있을 뿐 일관성은 없었던 ‘입시정책’이란 말이 이젠 없어지도록 대학들이 나서야 한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에서 줄곧 ‘3불정책 폐지’를 외치던 입학처장협의회도 벌써 임무가 끝난 듯 조용하다. 이제야말로 그동안 연구해왔던 대안들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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