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시사했지만 약발 안 먹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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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미국 하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한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경제 상황을 말하던 중 잠시 눈을 감은 채 고뇌에 찬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부시 행정부의 경기부양책에 대해 지지 의사를 나타내고,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돈의 신전’을 지키는 제사장인 그가 내리는 신탁의 효험이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씨티은행에 이어 17일 메릴린치가 사상 최대의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고 공개한 직후 버냉키 의장은 미국 하원 금융위원회 증언대에 섰다. 이 자리에서 그는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버냉키 의장은 이어 “경기침체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추가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책금리를 대폭 인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삼가던 직접화법까지 동원했다. 그간 불분명한 메시지 때문에 시장의 불안을 키운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했다.

 하지만 이날 뉴욕 증시는 급락했다. 그의 시장 달래기 발언이 별 효과가 없었던 셈이다. 불안을 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경기침체 가능성을 확인시켜 줘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게 확산되도록 만든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말까지 듣고 있다. 너무 늦었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로버트 헬러 전 FRB 이사는 “중앙은행이 지금보다 더 빠르게 대처했어야 했다”며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처럼 금리를 0.25%씩 찔끔찔끔 내리는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들은 버냉키의 말이 시장에서 약발이 먹히지 않는 원인을 ‘카리스마의 부재’에서 찾기도 한다. 17일자 뉴욕 타임스는 버냉키 의장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운영 방식이 위기 상황에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임자인 그린스펀과 달리 버냉키는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위원들이 발언한 뒤에야 의견을 낸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상반된 의견이 난무하고 있고 이것이 혼란을 더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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