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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괴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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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람들은 왜 이상한 것을 믿을까』의 저자 마이클 셔머는 아직도 비과학적이고 마술적 사고가 횡행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믿음 엔진(Belief Engine)’이라는 용어를 썼다. ‘믿음 엔진’이란 우연하고 불확실한 것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패턴을 추적하고 인과를 찾아내려는 두뇌의 메커니즘이다.

 가령 밭에 우연히 소의 배설물을 뿌렸더니 수확이 늘었다. 여기서 찾아낸 ‘믿음 엔진’ 덕분에 인류는 수렵·채집 시대에 진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믿음 엔진’에 오작동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기우제다. 셔먼은 아직도 사람들이 UFO나 외계인·귀신 같은 비과학에 매몰되는 것을 ‘믿음 엔진’의 부작용으로 설명한다.

 미신적 사고뿐 아니다. 억측이나 유언비어, 악성 루머, 흑색선전, 음모론도 비슷한 작동 과정을 거친다. 여기서는 주어진 정보가 제한적이다. 단편적 정보를 연결하는 일관된 논리가 없거나 정보와 현실 사이에 괴리가 클 때, 그 틈을 메우며 루머가 등장한다. 정치적 억압과 정보 독점이 심하고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폐쇄적일수록 많이 발생한다. 여기에 대중의 편견과 공격성 등이 작용한다. 황색 저널리즘은 이를 적극 활용한다. 대중들로서는 가십 속에서나마 평소 범접하기 힘든 권력자들을 끌어내리고 농단할 수 있다는 전복의 쾌감이 크다. 한마디로 괴소문이란 정보의 공식망에서 배제된 채 유통되는, 대중의 왜곡된 욕구나 억눌린 소망덩어리다.

 역설적인 것은 정보의 소수 독점이 무너진 인터넷 시대, 오히려 괴소문이 더욱 극성을 부린다는 점이다. 인터넷은 이미 ‘소문의 아우토반’이 돼 버렸다. 익명성과 ‘펌글’ 형태의 무한 복제 탓이다. 블로거의 치기 어린 장난글이 신문 머리기사로 둔갑하는 일도 벌어진다.

 최근 가수 나훈아씨와의 괴소문에 시달린 배우 김혜수씨가 사실무근임을 밝히고 나섰다. 치정, 폭력이 뒤엉킨 엽기 괴소문에 인간적인 괴로움도 호소했다.

 『소문, 나를 파괴하는 정체불명의 괴물』의 미하엘 셸레는 “공식적인 정정은 결코 소문을 완전히 소멸시키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거짓 소문, 비방과 험담의 무섭고도 놀라운 힘”이라고 썼다. 사실 소문의 더 큰 힘은, 비록 내가 믿지 않아도 소문을 소문이라 전하는 순간 소문은 더욱 강력하고 그럴 듯해진다는 속성 자체에 있을 것이다. 셸레는 “양식 있는 올바른 시민이라면 소문을 만드는 데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도 순진하기 그지없다”며 “우리는 누구라도 소문의 범인이거나 희생자”라고 썼다.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