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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해방직후 내각제 좌익臨政 구상-김일성 내무상 내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 과거 소련은 좌익이 주도한 내각책임제 형태의 남북임시정부를 세워 한반도 전체를 소비에트화한다는 계획아래 수상에 여운형(呂運亨),부수상에 박헌영(朴憲永)과 김규식(金奎植),내무상에 김일성(金日成)등 임시정부의 초대 내각까지짜 놓았음이 밝혀졌다.또 소련은 점령 4개월이 지난 45년 12월말까지 북한의 최고지도자 후보로 김일성.박헌영.조만식(曺晩植)등 3명을 꼽고 있었을 뿐 아직 최고지도자를 결정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이같은 사실은 中央日 報 현대사연구소가 최근 러시아 외무부 민정청과 국방부.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고문서보관소등에서 단독 입수한 당시 소련군의 「조선정세보고서」,소련공산당중앙위원회의 「조선문제에 관한 결정서」,소련정부가 평양에 있는美蘇공동위원회 소련 측 대표에게 보낸 「훈령」,소련군 연해주 군관구 사령부 군사위원 스티코프대장의 「조선문제 보고서」등 극비문서에서 드러났다.
당시 소련의 북한소비에트화 계획과 추진과정,특히 남북임시정부수립과 한반도 신탁통치안을 협의하기 위해 열린 미소공위에서 소련측이 준비한 한반도에 대한 구상과 전략,북한의 최고지도자 결정시기등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졌던 중요한 역사들 을 극명하게 조명해주는 극비문서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소공위 개최를 앞둔 46년 3월16일 소련외무부 조선문제 훈령 제1호 문건에서 몰로토프 외무부장관은『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수립하기로 결정한 조선임시정부형태는 내각책임제로 하고 내각은 남북한 정당.사회단체가 추천한 대표중 남북이 균등하게 배분하여 구성하되 남한대표중 절반은 좌익이 차지할 수 있도록 하라』고 평양에 있는 미소공위 소련측 수석대표(스티코프대장)에게 긴급 훈령했다.이는 좌익이 임시정부를 주도하도록 한후 신탁통치가 끝난뒤에도 한반도를 자국(自國)의 영향아래 두어 위성국으로만들어 나가겠다는 소련의 전략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이 훈령은 특히 『임시정부 내각에서 국가방위력과 외교권을 갖는 국방성과 외무성을 두지 말고 신탁통치가 끝난 후 구성될 국회는 단원제로 하며 국회가 구성 되기전까지 임시정부는 입법과 행정권만 행사한다』고 못박고 있어 소련은 신탁통치기간동안 임시정부에 자주독립국가 기능 등 핵심적인 권한을 부여하지 않기로 했음이 극명하게 밝혀졌다.
〈金局厚 현대사연구소 연구위원〉 훈령을 받은 스티코프대장은 박헌영.김일성과 상의해 수상에 여운형,부수상에 박헌영과 김규식,내무상에 김일성,산업상에 김무정(金武亭),교육상에 김두봉(金枓奉),선전상 오기섭(吳淇燮),노동상 홍남표(洪南杓),계획경제위원장 최창익(崔昌益 )등을,나머지 농림상.재정상.교통상.체신상.보건상.상업상 등은 미국이 추천한 인사로 임명한다는 내용의임시정부 조각안을 미소공위 개최 직전인 46년3월7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등에 긴급 보고했다.
이에앞서 45년 10월5일 연해주 군관구사령부가 국방부와 공산당 중앙위 등에 보낸 여운형에 대한 인물평정서는 『1921년모스크바에서 레닌을 만나기도 했던 여운형은 자신을 공산주의자로생각하며,한반도는 소련의 지배하에 있어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는 등 그를 친소인사로 평가,소련이 여운형을 임시정부의 초대수상후보로 선정한 배경이 밝혀지고 있다.

<金局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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