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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 책임 얽힌 징용배상, 이젠 일본이 ‘양보’할 차례
━ 이태진의 근현대사 특강 박정희 대통령이 1965년 12월 17일 한일협정 비준서에 서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7년간 막힌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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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옵서버석서 회원석까지, 1m 가는데 42년 걸렸다 [유엔 가입 30주년 ①]
■ 「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은 시작부터 유엔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1948년 12월 11일 유엔 총회 결의 195호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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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운하, 미중 경쟁 시대에 지정학 요충지의 가치 일깨웠다
수에즈운하 폐쇄 사태가 3월 29일 일단락됐다. 전 세계 교역의 요충지가 지난 3월 23일 400m 길이의 22만t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척에 막혀 글로벌 물류 위기를 부른 초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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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호 러시아 의원들에게 "핵무기는 협상 대상 아니다"....김정은은 할아버지(김일성)의 '줄타기 외교' 재현하나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핵무기를 협상 대상으로 한 대화에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러시아 타스통신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외무상은 이날 평양을 방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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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 만난 김일성 "붉은 기는 과연 얼마나 더 나부낄까"
꼭 24년 전인 1992년 8월 24일. 한국의 노태우 정부는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6·25 전쟁이라는 과거사를 덮고, 대만과의 단교라는 아픔을 무릅쓴 결정이었다. 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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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한·일 관계, 정상회담으로 길 뚫어야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은 “외교란 결국 균형적인 자세 속에서 우리의 살길을 찾아가는 것”이라며 지난 50년의 한국 외교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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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남침 소식 외신 보도로 처음 알아”
1951년 6월 9일 중부전선 적근산 남쪽 고지에서 포를 쏘고 있는 미 제7사단 장병들. [사진 이중근] 아무 날이라도 좋다. 예를 들어 6·25전쟁 324일째인 195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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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남침 소식 외신 보도로 처음 알아”
1951년 6월 9일 중부전선 적근산 남쪽 고지에서 포를 쏘고 있는 미 제7사단 장병들. [사진 이중근] 이중근 회장 관련기사 “역사를 사실대로 전달, 국론 통일 됐으면 하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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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 만난 김일성 “붉은 기는 과연 얼마나 더 나부낄까”
노태우 대통령(왼쪽)이 92년 9월 30일 중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서울로 떠나기 앞서 양상쿤 국가주석을 만나 방중 기념 사진첩을 보고 있다. 이틀 전 두 사람은 인민대회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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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 만난 김일성 “붉은 기는 과연 얼마나 더 나부낄까”
노태우 대통령(왼쪽)이 92년 9월 30일 중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서울로 떠나기 앞서 양상쿤 국가주석을 만나 방중 기념 사진첩을 보고 있다. 이틀 전 두 사람은 인민대회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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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교과서 “미국이 북한 침략”
중국 정부가 발행한 역사교과서가 한국전쟁에 대해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조차 왜곡해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8학년(우리의 중학교 2학년에 해당)용 ‘중국역사’(사진) 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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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국제연합 출범 64주년 … 한반도 운명과 특별한 인연
최규하 외무부 장관(앞줄 오른쪽)이 1968년 12월 11일 한국 문제를 토의 중인 유엔총회 정치위원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10월 24일은 국제연합일이다. 1945년 10월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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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라운지] "북한, 핵 보유국 인정 못해"
"러시아는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 글레프 이바셴초프(61.사진)주한 러시아 대사는 20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국방연구원(KIDA) 주최 국방포럼에 참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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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규칼럼] 카자흐스탄에 가 보십시오
길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카자흐스탄을 아십니까" 물으면 과연 몇 사람이나 "안다"고 답할까. 대부분이 지구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사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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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000]
1991년 1. 3 : 최의웅(군사정전위 북한측 수석위원), 유엔군측 수석위원을 한국군장성으로 교체하는 것을 반대하는 담화 발표. 1.28 : 김영남(부총리 겸 외교부장), 알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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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0]
1961년 1.11 : 북한-예멘 간 통상협정 및 무역대표부 설치의정서 조인. 1.12 : 북한-루마니아 간 방송협정 체결. 1.23 : 쿠바주재 북한 초대대사 홍동철 임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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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회고록 요약본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15일 발간됐다.‘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이란 제목의 회고록은 상·하 두권으로 합쳐서 8백쪽 분량으로 조선일보사에서 펴냈다. 金전대통령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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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 당의장 올레그 셰닌의 김정일 접견록
본사는 북한 김정일 (金正日) 이 지난달 2일 10년만에 처음으로 접견한 외국인사 올레그 셰닌 전 소련공산당의장 (본지 10월5일자 1면 참조) 이 러시아외무부에 제출한 김정일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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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끝
1947년 9월 제2차 美蘇공동위원회가 사실상 결렬되자 남과북에서는 독자적인 정권수립 움직임이 가속화됐다.美군정은 한반도문제를 유엔에 상정했고,이에 반대해 蘇군정과 북한은 美蘇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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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朴憲永 浮上
여운형(呂運亨)이 주도하는 건국준비위원회가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무렵인 1945년8월18일,서울의 거리거리에는 「지하에 숨어 있는 박헌영동무여! 어서 나타나서 있는 곳을 알이라(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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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해방직후 내각제 좌익臨政 구상-김일성 내무상 내정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 과거 소련은 좌익이 주도한 내각책임제 형태의 남북임시정부를 세워 한반도 전체를 소비에트화한다는 계획아래 수상에 여운형(呂運亨),부수상에 박헌영(朴憲永)과 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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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45年末까지 北지도자 未定
해방후 소련은 북한만을 소비예트화 하려 했는가. 아니면 한반도 전체를 위성국으로 만들려 했는가.한반도 전체를위성국으로 만들려 했다면 그 구체적인 전략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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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蘇,김일성에 신문보도 일일이 지시
◇1948년4월9일 〈소련군 극동(極東)사령관 비루소프 암호전문〉앞으로 조선에 대한 모든 지시는 나를 거쳐야 한다고 스티코프동지에게 전하라.그는 나의 정치부관이지 소련대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