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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운하, 미중 경쟁 시대에 지정학 요충지의 가치 일깨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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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운하 폐쇄 사태가 3월 29일 일단락됐다. 전 세계 교역의 요충지가 지난 3월 23일 400m 길이의 22만t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척에 막혀 글로벌 물류 위기를 부른 초유의 사고다. 사고를 낸 에버기븐호는 이날 네덜란드의 선박 구난업체인 스마트의 작업으로 물에 뜬 다음 북쪽으로 이동했다. 그 뒤 남북에서 대기하던 선박들이 차례로 진입하면서 수에즈운하의 통행이 재개됐다.

400m 컨테이너선에 막아버릴 정도로 #허술한 지정학적 급소 수에즈운하 실상 #56년 이집트 나세르, 수에즈운하 국유화 #영·프, 점령하자 미 반대, 유엔 철군 결의 #영국·프랑스 글로벌 패권국 지위 무너져 #제국주의가 지정학 요충 차지 시대 종말 #패권, 군사·경제 넘어 도덕·지지가 바탕 #중국, 일대일로 따라 해상 요충지 장악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 지정학 전략 답습 #글로벌·디지털 시대 지정학 의미 물어 #미·러도 요충지 확보 각축 벌일지 주목

1956년 이집트의 수에즈운하 국유화로 벌어진 수에즈 동란 당시인 그해 11월 11일 수에즈운하 주변의 석유 저장시설이 영국 항공모함 이글함에서 출격한 전투기의 공습으로 불타고 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은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언한 이집트를 공격했지만 미국과 소련, 그리고 유엔의 강력한 반대에 철군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그 이후 글로벌 패권국가의 지위 상실을 확인해야 했다. 수에즈운하는 국가적 자부심과 분쟁의 원인이 되어왔다. AP=연합뉴스

1956년 이집트의 수에즈운하 국유화로 벌어진 수에즈 동란 당시인 그해 11월 11일 수에즈운하 주변의 석유 저장시설이 영국 항공모함 이글함에서 출격한 전투기의 공습으로 불타고 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은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언한 이집트를 공격했지만 미국과 소련, 그리고 유엔의 강력한 반대에 철군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그 이후 글로벌 패권국가의 지위 상실을 확인해야 했다. 수에즈운하는 국가적 자부심과 분쟁의 원인이 되어왔다. AP=연합뉴스

일본·대만 선박이 유럽~아시아 뱃길 막아

사고 선박인 에버기븐호는 2018년 일본 서부 시코쿠(四國)의 에히메(愛媛) 현에 있는 이마바리(今治) 조선이 건조했으며, 자회사인 쇼에이기센(正榮汽船)이 선주다. 대만의 에버그린 마린(長榮海運)이 이 선박을 용선해 선사로서 운영해왔다. 에버그린은 대만 기업인인 장롱파(張榮發·1927~2016년)가 1968년 설립한 뒤 세계적인 해운사로 발돋움했다. 한국에도 낯익은 에바항공 등을 거느린 물류그룹인 에버그린(長榮) 그룹 소속이다.

선주가 일본 쇼에이 기센, 이 배를 용선한 선사가 대만의 '에버그린'인 22만t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인 에버기븐호가 지난 23일 지정학적 요충지인 수에즈운하에 좌초됐다. 지난 25일 수에즈운하관리청이 보낸 포크레인이 선박과 부딪힌 운하 제방 아래 토사를 파내고 있다. 폭 59m, 길이 400m, 22만t 크기의 이 배는 중국에서 출발해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 사진은 거대한 선박 사고에 즉각 대처를 못하는 상황을 풍자하는 밈으로 널리 확산했다. [연합뉴스]

선주가 일본 쇼에이 기센, 이 배를 용선한 선사가 대만의 '에버그린'인 22만t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인 에버기븐호가 지난 23일 지정학적 요충지인 수에즈운하에 좌초됐다. 지난 25일 수에즈운하관리청이 보낸 포크레인이 선박과 부딪힌 운하 제방 아래 토사를 파내고 있다. 폭 59m, 길이 400m, 22만t 크기의 이 배는 중국에서 출발해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 사진은 거대한 선박 사고에 즉각 대처를 못하는 상황을 풍자하는 밈으로 널리 확산했다. [연합뉴스]

일본과 대만 업체가 건조하고, 소유하며, 운영하는 선박이 유럽으로 항해하다가 중동의 수에즈운하에서 대형 사고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이번 사고는 확실히 글로벌적이다. 에버기븐호는 중국에서 1만8000여 개의 컨테이너를 싣고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이번 사고는 전 세계가 빈틈없는 물류망으로 연결돼 공생하는 글로벌 시대를 실감하게 했다. 실제로 교역로인 수에즈운하가 막히면서 단순한 ‘물류 동맥경화’를 넘어 국제유가 등 글로벌 경제에 상당한 연쇄 파급효과를 일으켰다.

위성에서 바라본 수에즈 운하 선박 사고 현장. 지정학적 요충지가 이렇게 좁고, 쉽게 막힐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경악했다.AP=연합뉴스

위성에서 바라본 수에즈 운하 선박 사고 현장. 지정학적 요충지가 이렇게 좁고, 쉽게 막힐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경악했다.AP=연합뉴스

폭 121~313m 좁다란 수로는 지정학적 급소

이번 사고는 이와 동시에 ‘지정학·지경학적 급소’라는 용어의 무게감을 새삼 일깨웠다. 수에즈 운하는 길이 193.5㎞에 폭은 수상이 313m이고 수심 24m의 밑바닥에선 121m다. 이런 좁은 수로에 길이 399.94m, 폭 58.8m, 흘수선까지의 높이가 14.5m에 이르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대각선으로 걸리면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물류가 1주일간 위기를 겪었다. 기가 막힐 일이다. 그 중요하다는 수에즈 운하가 이렇게 좁은 선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놀랍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전 세계 교역의 약 90%가 해상을 통해 이뤄진다.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수에즈운하는 해상 교역의 주요 관문이다. 수에즈 운하는 2020년 기준 연간 1만9000척의 선박이 통과했다. 화물량으로 따지면 12억5000만t에 해당한다. 전 세계 교역량의 12%를 넘는다.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지나다 좌초한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운하를 가로막으며 국제 물류가 심각하게 1주일간 정체됐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기 위해 기다리는 선박들이 작은 점처럼 보이는 지난 3월 27일의 위성 사진. AP=연합뉴스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지나다 좌초한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운하를 가로막으며 국제 물류가 심각하게 1주일간 정체됐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기 위해 기다리는 선박들이 작은 점처럼 보이는 지난 3월 27일의 위성 사진. AP=연합뉴스

1869년 수에즈운하 건설은 제국주의 프로젝트

수에즈운하 건설 자체가 당시 제국주의 패권 국가인 영국·프랑스가 식민지와의 거리를 줄이고 경제적·국제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의 하나로 이뤄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수에즈운하 건설은 프랑스인 엔지니어 페르디낭 드 레셉스가 제안해 영국·프랑스가 1859년 착공했으며 1869년 11월에 끝났다.

1869년 수에즈운하 개통 행사.유럽 각국의 왕족과 정치인들이 몰렸다. 사진=수에즈운하관리청(SCA)

1869년 수에즈운하 개통 행사.유럽 각국의 왕족과 정치인들이 몰렸다. 사진=수에즈운하관리청(SCA)

수에즈운하의 건설로 영국과 식민지 인도, 프랑스와 식민지 인도차이나와의 항해 거리는 1만㎞ 이상 단축됐다. 수에즈운하 개통으로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활용법도 달라졌다. 영국은 1829년 식민지로 삼았던 미얀마를 유럽에 수출할 환금작물인 쌀의 생산기지로 삼았다. 미얀마 농민들은 식민주의자들의 수익 확대를 위해 광범위한 지역에서 단일 작물로 쌀만 재배해야 했다. 미얀마가 한때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으로 기록됐던 이유다. 토지 이용을 합리화하고 생태계의 안정을 도모하며 농민의 복리를 높여줄 작물 선택이 아니라, 식민지주의자들의 이익 확대를 위한  플랜테이션 단일작물 재배가 확대됐다.
이집트 왕국의 군주인 이스마일 파샤는 수에즈운하 개통기념으로 수도 카이로를 새롭게 단장했으며, 오페라하우스를 설립했다. 그 개막 작품으로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1813~1901년)에게 ‘아이다’의 작곡을 의뢰해 1871년 12월 24일 초연을 했다.
프랑스의 이집트 고고학자가 고대 이집트에서 영감을 얻어 쓴 원작을 바탕으로 베르디가 오페라로 만들었다. 보기에 따라선 낭만주의의 한 요소인 ‘이국취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내용이다.
수에즈운하 개통은 당시 서양인에게 흥분을 안겨줬다. 과학기술을 동원한 지리적 확대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업적이 유럽의 아시아에 대한 식민 지배와 경제적 통제 강화와 연결됐다는 사실이다.

1959년 이집트가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하자 이집트인들이 운하변에 있는 운하 건설 제안자인 프랑스인 페르디낭 드 레셉스의 동상을 부수고 있다. 사진=Public Domain

1959년 이집트가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하자 이집트인들이 운하변에 있는 운하 건설 제안자인 프랑스인 페르디낭 드 레셉스의 동상을 부수고 있다. 사진=Public Domain

수에즈운하 56~59년과 67~75년 전쟁으로 폐쇄

아시아·아프리카인에게 혹독했던 제국주의 시대는 영원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영국·프랑스의 한계가 드러나고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종말을 고하기 시작했다. 아랍권에선 민족주의의 기운이 일면서 수에즈운하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관련된 전쟁으로 수에즈운하가 2차례에 걸쳐 폐쇄된 것이다. 수에즈운하는 20세기 들어 1956~59년과 1967~1975년 두 차례에 걸쳐 폐쇄됐다. 모두 군사적 모험주의 때문이었다.

1956년 7월 18일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가운데 손을 들고 있는 사람)이 수에즈운하 중간도시인 이스마일리아에 도착해 환호하는 군중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하고 소유권을 영국으로부터 공식 접수했다. AP=연합뉴스

1956년 7월 18일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가운데 손을 들고 있는 사람)이 수에즈운하 중간도시인 이스마일리아에 도착해 환호하는 군중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하고 소유권을 영국으로부터 공식 접수했다. AP=연합뉴스

1956년 6월 26일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1918~1970년, 재임 1956~1970년)이 영국·프랑스 소유이던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하자 영국·프랑스가 외교적 협상 대신 군사적 행동을 선택했다. 이스라엘도 시나이 반도 동쪽의 아카바 만과 티란 해협에서 항행의 자유를 얻기 위해 참전했다. 이스라엘이 수에즈운하를 거치지 않고 홍해로 접근할 수 있는 수로다.
3국이 1956년 7월 26일 수에즈운하 지구를 침공하면서 제2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수에즈 동란으로 불리는 전쟁이다. 항공모함·전함·순양함·잠수함에 공수부대를 동원한 영국·프랑스는 이스라엘의 도움까지 받아 군사적인 승리를 거뒀다. 수에즈운하 지대와 운하 동쪽의 시나이 반도를 점령했다. 이들 나라는 여전히 군사적으로는 강국이었다.
하지만 외교에선 그러지 못했다. 당시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1890~1969년, 재임 1953~1961년)은 전쟁 대신 외교적 해결을 하라고 3국을 압박했다.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 공산당 제1서기(1894~1971년, 재임 1953~1964년)도 영국·프랑스를 압박할 기회로 여겼다. 소련의 니콜라이 불가닌 총리는 거친 언사로 양국을 압박했다. 불가닌은 소련군 원수와 국방부 장관 출신이었다.
유엔까지 가세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선 영국과 프랑스가 상임이사국으로서 비토권을 쥐었지만, 총회에선 아니었다. 유엔은 특별 긴급총회를 열고 11월 2일 즉각적인 정전을 요구하는 총회 결의 997호를 채택했다. 냉전 상대방인 소련은 물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으로 함께 싸웠던 미국, 그리고 2차대전 직후 자신들이 나서서 설립한 유엔의 총회까지 정전을 요구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결국 두 손을 들었다. 11월 6일 영·프에 이어 8일에는 이스라엘도 정전에 동의했다.

1956년 수에즈 사태 해결 공로로 195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캐나다의 래스터 피어슨. 당시 캐나다 외무부 장관이었으며 나중에 총리를 지냈다. 유엔 평화유지군을 창안한 인물로 기억된다. 한국전쟁 휴전협정 체결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사진=노벨재단

1956년 수에즈 사태 해결 공로로 195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캐나다의 래스터 피어슨. 당시 캐나다 외무부 장관이었으며 나중에 총리를 지냈다. 유엔 평화유지군을 창안한 인물로 기억된다. 한국전쟁 휴전협정 체결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사진=노벨재단

수에즈 위기 해결한 캐나다 피어슨 외무에 노벨평화상

수에즈운하 동쪽의 시나이반도엔 휴전선이 그어지고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제1차 유엔긴급군(UNEF)이라는 이름의 평화유지군(PKO)이 주둔했다. 이후 유엔평화유지 활동의 기원이 되는 군대다. 당시 캐나다 외무부 장관으로 평화유지군을 제안한 레스터 피어슨(1897~1972년)은 이듬해인 1957년 중동분쟁을 유엔을 통해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피어슨은 제1차 세계대전에 조종사로 참전했으며 토론토에서 역사학 교수를 하다 자유당 소속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1944~1946년 주미대사를 지내며 2차대전 종전과 1945년의 유엔 창설에 기여했다. 1948~1957년 외무부 장관을 맡았으며 6·25전쟁 휴전 협상에도 관여했다. 1963~1968년 총리를 지냈다. 총리 재임 중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 요구를 거부하고 확전을 비판했다. 총리와 야당 지도자 시절 캐나다에 건강보험, 대학생 학비 융자, 연금 등을 도입했다. 현대 캐나다의 토대를 만든 인물이다. 20세기 후반 캐나다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수에즈 동란이 벌어지던 1956년 11월 19일 수에즈운하 북쪽 입구인 포트 사이드에 선박이 침몰해 있다. 당시 마비됐던 운하는 1959년 재개통됐다. AP=연합뉴스

수에즈 동란이 벌어지던 1956년 11월 19일 수에즈운하 북쪽 입구인 포트 사이드에 선박이 침몰해 있다. 당시 마비됐던 운하는 1959년 재개통됐다. AP=연합뉴스

수에즈운하 소유권 고집하다 패권국 위치 상실 확인

영국과 프랑스는 이처럼 미국을 설득하지 못하고 유엔과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아 수에즈운하에서 철수하면서 강대국 지위 상실을 자각해야 했다. 이로써 영국과 프랑스는 글로벌 패권국의 지위를 잃고 미국이 서방의 유일 강국으로 자리 잡게 됐다. 지정학적 요충지를 선점하고 군사력과 경제력을 내세우며 패권을 추구하면서 약소국의 주권을 누르는 제국주의 시대는 노을 속으로 사라졌다. 대국과 소국이란 개념은 시효를 다했다. 식민주의도 종말을 고했다.
유엔이 설립되면서 국제사회는 형식적이나마 주권존중·호혜·평등·상호존중·공존공영의 시대가 열렸다. 냉전이 가속하면서 세계 각국은 미국과 소련의 우산 아래에서 새로운 국제관계를 추구하게 됐다. 수에즈 동란은 중요한 교훈을 안겨준다. 글로벌 패권은 군사력·경제력 넘어 도덕성과 비전, 그리고 국제사회의 지지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사실 말이다.

핵 없던 프랑스, 수에즈 참극 뒤 개발

주목할 점은 수에즈 위기 당시 미국과 소련, 영국은 핵보유국이었고, 프랑스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소련은 미국에 이어 1949년 원폭실험으로 핵보유국이 되고 1953년 수소폭탄도 손에 넣었다. 영국은 1952년 원폭에 이어 1957년 수폭 보유국이 됐다. 하지만 프랑스는 당시 핵무기가 없었다.
결국 프랑스는 수에즈 동란이 끝난 1960년 원폭을, 1968년 수폭을 각각 확보했다. 하지만 핵을 가진다고 해서 ‘영광스러운’ 프랑스의 시대는 돌아오지 않았다. 영국도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제한적인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로 만족해야 했다. 수에즈운하가 재편한 20세기 후반 국제질서다. 수에즈 운하는 정리 작업을 거치고 1959년 다시 통행을 시작했다.

1967년 6월 6일진쟁 직후 수에즈 운하의 동쪽에서 이곳까지 진군한 이스라엘군이 운하 너머를 살피고 있다. 당시 6일 전쟁의 승리로 이스라엘은 수에즈운하 동쪽의 시나이 반도를 점령했다. 1973년 욤 키푸르에서 고전한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수에즈운하의 통항을 간섭하지 않기로 하면서 운하는 기뢰 제거 등을 거쳐 1975년 통행이 재개돼 현재에 이른다. AP=연합뉴스

1967년 6월 6일진쟁 직후 수에즈 운하의 동쪽에서 이곳까지 진군한 이스라엘군이 운하 너머를 살피고 있다. 당시 6일 전쟁의 승리로 이스라엘은 수에즈운하 동쪽의 시나이 반도를 점령했다. 1973년 욤 키푸르에서 고전한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수에즈운하의 통항을 간섭하지 않기로 하면서 운하는 기뢰 제거 등을 거쳐 1975년 통행이 재개돼 현재에 이른다. AP=연합뉴스

6일전쟁으로 폐쇄된 운하, 평화 무드로 다시 열어

수에즈 운하는 그 뒤에도 1967년에서 1975년까지 폐쇄됐다. 1967년 아랍권이 이스라엘과 벌인 제3차 중동전쟁인 6일전쟁에서 대패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집트는 수에즈운하 동쪽의 시나이반도를 이스라엘에 점령당했다. 수에즈운하가 양국의 최전선이 됐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1973년 욤 키푸르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제4차 중동전쟁에서 아랍에 기습을 당하면서 전력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방심하다 허를 찔린 것이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인 욤 키푸르 전쟁 당시 이집트 군이 수에즈 운하에 부교를 설치해 차량을 이동시키고 있다. 사진=공적 도메인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인 욤 키푸르 전쟁 당시 이집트 군이 수에즈 운하에 부교를 설치해 차량을 이동시키고 있다. 사진=공적 도메인

이 때문에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군사적 방안만으로는 평화와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로 화해를 추구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2차례에 걸쳐 수에즈운하의 통행을 보장하는 협정을 맺었다. 미국은 1974년 세 차례에 걸쳐 1만9500t급 강습상륙함 인천함 등을 보내 수에즈 운하의 기뢰와 주변의 지뢰, 그리고 불발탄을 제거하는 소해 작업을 펼쳤다. 인천상륙작전의 인천을 딴 군함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 수에즈 운하는 1975년 재개통됐다.
그 뒤로 어떤 테러도, 전쟁도 수에즈운하의 통행을 막지 못했다. 운하는 어떻게든 열려야 한다는 건 국제사회의 약속이다. 선적이나 용도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선박이든 통행시키는 건 국제 운하의 철칙으로 자리 잡았다. 정해진 통행료만 내면 말이다.

1975년 6월 5일 수에즈운하 재개통을 축하하기 위해 이집트 포트사이드에 사람들이 모였다. AP=연합뉴스

1975년 6월 5일 수에즈운하 재개통을 축하하기 위해 이집트 포트사이드에 사람들이 모였다. AP=연합뉴스

제국들, 글로벌 지정학 요충지인 초크포인트 확보

수에즈운하는 국제정치에서 ‘초크포인트(Choke Point)’라고 부르는 지정학적인 요충지 또는 관문의 하나다. 지정학의 급소로 볼 수 있다. 해양국가가 지정학적으로 국력을 유지하는 핵심 지역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주요 해로의 병목 지역이 여기에 해당한다.
전 세계의 주요 초크포인트는 제국주의 시대 각축의 대상이었으며, 오랫동안 패권 국가가 차지하거나 관리했다. 중동에서는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운하와 함께 페르시아 만(아라비아 만)과 오만 해 사이의 좁은 수로인 호르무즈 해협, 홍해와 아덴만 사이에서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 동북부를 아우르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여기에 해당한다. 영국은 프랑스와 공동으로 1869년 수에즈운하를 완공한 이래 1956년까지 군대를 주둔시켜 관리했다. 호르무즈 해협의 남단인 오만과 지금의 아랍에미리트(UAE)인 여러 작은 에미리트(이슬람군주국)를 각각 1970년과 1971년까지 보호령으로 뒀다. 영국은 호르무즈 해협 북쪽인 이란에서도 러시아·소련과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각축을 벌였다.
또 다른 초크 포인트로 대서양과 지중해 사이의 병목에 위치한 지브롤터 해협,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사이의 믈라카 해협도 있다. 지브롤터는 영국이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1701~1714년) 당시인 1704년 점령하고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영유권을 인정받은 이래 계속 해외 영토로 관리하고 있다. 영국은 믈라카 해협의 동부의 말레이 반도와 동남쪽 끝의 싱가포르 섬을 18세기 초부터 1963년까지 식민지로 운영했다.

지정학적 초크포인트인 호르무즈 및 바브엘만데브 해협. [중앙일보]

지정학적 초크포인트인 호르무즈 및 바브엘만데브 해협. [중앙일보]

아메리카 대륙에도 여러 곳의 초크포인트가 있다. 가장 중요한 곳이 중부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운하다. 남부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마젤란해협과 북태평양과 북극해 사이의 베링 해협도 있다. 미국 동남쪽 끝인 플로리다 반도와 반미국가 쿠바 사이에 있는 플로리다 해협도 있다.
파나마운하는 1914년 미국 공병대에 의해 완공된 길이 82㎞의 수로다. 파나마는 콜롬비아의 영토였으나 미국은 이 지역 주민들이 1903년 독립국을 세우도록 도왔으며, 이듬해 운하 공사를 시작했다. 운하 완공 뒤 미국이 관리권을 행사하다 1999년 12월 31일 파나마에 완전히 넘겼다.
베링해협은 러시아가 1867년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현재 가치 약 1억2795만 달러)에 팔면서 양국의 경계가 됐다. 북태평양에서 북극해로 이어지는 관문이다. 앞으로 북극 항로가 추가로 개발되면 국제적으로 중요한 요충지가 될 수 있다. 가장 좁은 곳의 길이가 85㎞에 불과한 베링 해협은 냉전 당시 미국이 소련에 겨누는 비수가 됐다. 반대로 가장 좁은 곳의 폭이 150㎞인 플로리다 해협은 냉전 기간에 소련과 공산권이 미국을 노리는 칼끝의 역할을 했다.

좌초에서 풀려난 에버 기븐호가 지난 29일 수에즈운하를 항해하고 있다. UP=연합뉴스

좌초에서 풀려난 에버 기븐호가 지난 29일 수에즈운하를 항해하고 있다. UP=연합뉴스

21세기에도 지정학 위력적?…중국, 과거 제국주의 답습

이러한 초크포인트의 하나인 수에즈운하에서 발생한 선박사고는 글로벌·디지털 시대인 21세기에도 지정학의 위력이 여전히 강력함을 새삼 확인해줬다. 문제는 중국이다.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제국주의 국가의 침탈을 받았던 중국은 과거 못 해봤던 제국주의 국가의 행동을 대국굴기(大國崛起)라는 이름으로 21세기에 재현하려고 시도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대국굴기(大國崛起)’는 2006년 중국 CCTV-2에서 방영한 12부작 역사 다큐멘터리의 제목이다. 글로벌 패권을 차지했던 포르투갈·스페인의 항해시대(航海時代), 네덜란드의 소국대업(小國大業), 현대화를 이끈 영국의 주향현대(走向現代),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의 공업선성(工業先聲), 혁명과 전쟁의 어려움을 이겨낸 프랑스의 격정세월(激情歲月) 등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과 근대화부터 시작한다. 이어서 후발국으로 제국을 이룬 독일의 제국춘추(帝國春秋), 메이지(明治) 유신으로 부국강병을 이룬 일본의 백년유신(百年維新), 강대국이 되려는 러시아의 심도도강(尋道圖强), 새로운 방식을 찾은 소련의 풍운신도(風雲新途)도 다룬다. 여기에 더해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꿈을 이룬 미국의 신국신몽(新國新夢), 미국의 위기와 도전을 다룬 위국신정(危局新政)에 중국의 21세기 대국의 길을 제시한 대도행사(大道行思)까지 12편으로 이뤄졌다.

좌초에서 풀려나 수에즈운하를 항해 중인 에버 기븐호의 옆 모습. 신화=연합뉴스

좌초에서 풀려나 수에즈운하를 항해 중인 에버 기븐호의 옆 모습. 신화=연합뉴스

미·러까지 다시 지정학의 시대로 돌아갈까

문제는 중국이 강대국이 되기 위해 새로운 문명을 열어가는 과감한 도전이 아닌 지정학적인 요충지 확보라는 오래된 제국주의 수법을 답습한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초크포인트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아프리카 국가 지부티의 항만을 임대해 기지를 설치했다. 호르무즈 해협으로 이어지는 오만 해에 접한 파키스탄의 항구도시 과다르도 빌려서 개발 중이다. 인도양에 접한 스리랑카의 남단 함반토타 항구도 확장 중이다. 벵골 만에 접한 방글라데시의 차토그람(과거 영어식 치타공에서 벵골어로 개명) 항구도 한자 간판을 걸어둔 중국 건설사들이 확장공사를 벌이고 있다. 미얀마에서도 중국 서남부 윈난(雲南) 성 쿤밍(昆明)으로 이어지는 가스관·송유관 건설과 항구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일대일로 전략의 해양 부문이다.
중국은 이미 한 세기도 더 전에 제국주의 국가들이 채택했던 책략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지정학적 급소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번에 수백m 너비의 좁다란 수에즈 운하가 언제라도 막힐 수 있고, 세계 경제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으니만큼 앞으로 후폭풍이 거세질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러시아가 중국에 대항해 요충지 확보를 위한 지정학적 경쟁에 나선다면 국제사회는 더욱 복잡하고 혼탁해질 수 있다. 글로벌·디지털 시대에 지정학적 각축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도 생각해야 한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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