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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팔이 경제학'은 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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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선거가 다가오면 정치적 계산이 경제적 논리를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 내에 있거나 정치권과 줄이 닿는 경제학자와 경제전문가들이 당황해 하는 일도 그만큼 자주 생기게 된다. 이들이 어쩔 수 없이 평소의 지식이나 소신과는 판이한 주장을 내세워야 할 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얼굴 두꺼운 정치가들이야 수시로 거짓말을 하거나 말바꾸기가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그럴 주변이 못 되는 경제전문가들로서는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개중에는 자청해 정치가의 입맛에 맞는 논리를 개발해 대령하는 눈치 빠른 이들도 없진 않지만 대분분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한 걸로 생각된다.

미국에서는 레이건 대통령후보의 유세기간 중 일부 공급주의 경제학자들이 그의 입맛에 맞는 특이한 이론을 제공했다. 세금을 깎아주면 세수가 오히려 늘어난다는 게 대표적인 주장이었다. 당시 레이건과 경쟁관계에 있던 조지 부시(아버지)는 이를 '주술경제학(voodoo economics)'이라 매도했고 현재 백악관의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인 그레고리 맨큐는 이런 학자들을 '돌팔이(charlatan)'라고 폄하했다.

수년 전 호주에서는 유명한 야당 정치인이 그 나라 돈의 가치가 미 달러화에 비해 자꾸 떨어지자 경제운용의 실패 때문이라고 재무장관을 심하게 비난한 적이 있었다. 얼마 후 정권이 바뀌어 경제통인 이 사람이 재무장관 자리를 차지하게 됐는데 그러고 나서도 평가절하가 계속되자 마침내는 말을 바꾸었다. 호주 돈의 대외가치가 떨어지면 수출이 잘되고 경상수지도 개선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나쁜 일이 아니라고 발뺌에 나선 것이다.

이 사람들과는 달리 맨큐는 최근 학자의 양심과 용기를 보여주었다.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양당이 모두 일자리 창출을 주장하면서 의회에서 보호무역의 조짐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즈음에 그가 자유무역과 해외인력 아웃소싱(해외위탁)을 옹호하고 나섰던 것이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일자리를 임금이 싼 나라에 빼앗기는 것이 우선은 고통스러우나 장기적으로는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 정부는 일자리를 보호하겠다고 외국과의 경쟁을 막아서는 안 된다. 자유시장이야말로 새 일자리 창출을 위한 최선의 방안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자신의 저서에서 강조했던 바와도 일치한다. 베스트셀러인 '맨큐의 경제학' 머리 부분에서 그는 경제학의 10대 원칙을 요약하고 있는데 다섯번째 원칙이 '(자유)무역을 하면 모든 당사자들의 생활이 윤택해진다'는 것이다. 맨큐의 발언에 대해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의 의원들까지 비난의 소리가 높지만 소신있는 발언에 대해 학계나 전문가들의 지지와 옹호도 만만치 않다.

우리도 총선이 코앞에 닥쳤으므로 머지않아 정부 여당이나 야당이 각각 희한한 정책들을 들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편익과 비용을 비교한 합리적인 판단에 바탕을 둔 정책들이 아니라 민심과 표를 의식한 대안들을 제시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산술이 경제적 논리를 앞서게 되면 경제와 사회가 엄청난 후유증을 겪게 마련이다. 선심성 또는 눈가림의 헛된 공약을 선거 후에 철회하게 되면 정부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무너지고 만다. 그렇다고 그 공약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다음 세대 국민한테까지 막대한 부담을 지우게 된다. 경제정책 입안자 중 합리성과 양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제부터가 시련의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의 지금 현실에서 어려운 일이 되겠지만 이들이 코드를 의식해 눈치나 보는 데서 벗어나 맨큐처럼 경제논리에 바탕을 둔 소신을 거리낌없이 주장해 줄 것을 기대해 본다.

노성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