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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의 ‘타짜 신화’ 남기고 떠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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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박병무(47·사진) 하나로텔레콤 사장은 한 달 뒤면 ‘자유인’이 된다. 하나로텔레콤이 SK텔레콤에 팔려 3월 주주총회를 끝으로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난다.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하나로텔레콤 사옥에서 만난 박 사장은 “직원과 대주주가 원하는 방향으로 매각 작업이 마무리되고 경영도 흑자 기반을 다지고 있어 개인적으로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LG그룹이 SK텔레콤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으나 직원들의 의사를 반영해 거절한 것이 사실이냐”고 묻자 "직원들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2006년 3월 이 회사 CEO로 선임되기 전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서울대 수석 입학·졸업, 사법고시 최연소 합격,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 인수합병(M&A) 전문 변호사. 이후 행보도 남달랐다. 2000년 돌연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투신해 2년 만에 회사(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의 시가총액을 20배로 끌어올렸다. 2003년엔 다시 미국계 사모펀드인 뉴브릿지캐피탈코리아의 대표가 돼 제일은행 M&A를 성사시켰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타짜’. 박 사장은 그러나 "이제 ‘수석’ ‘M&A 전문가’란 꼬리표는 떼고 싶다”고 말했다. 전문 경영인으로 봐 달라는 주문이다.

 -‘투기 자본의 길잡이’란 오해를 사기도 했는데.

 “사모펀드에 대해 확실히 알고 싶었다. 나같은 토종이 선진 금융기법의 핵심을 배운다는 건 우리 금융의 미래를 위해서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 아닐까.”

 -어떤 것을 배웠나.

 “세계적 투자 업체들은 수탁자 책임의식(fiduciary duty·고객이 아닌 자금 운용자의 이익을 우선하는 행위 금지)이 강하다. 투자 업체들이 이런 의식으로 무장하면 정부가 나서 굳이 규제를 할 필요가 없다. 또 인수한 기업의 가치를 높여 수익을 창출하는 게 품격 있는 투자다. 하지만 한국 투자자들은 여전히 ‘될성부른 매물’ 찾기에만 골몰한다는 느낌이다.”

 -‘하나TV’를 통해 한국 인터넷TV(IPTV)의 초석을 놓았는데.

 “하나로텔레콤은 종합통신기업임에도 매출의 60% 이상을 초고속인터넷 부문에 의존하는 취약한 구조였다. 하나TV라는 신사업을 통해 융합서비스 기업으로 거듭나려 노력했다. 서비스 초기에는 ‘매각을 위한 제스처일 뿐’이란 비아냥도 들었다. 이젠 80만 가입자를 확보한 회사의 성장 동력이다.”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가 국내 통신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통신시장에 변혁이 일 거다. SK텔레콤의 무선 서비스와 하나로텔레콤의 유선 서비스가 결합해 이전엔 볼 수 없던 컨버전스 서비스가 쏟아질 것이다. 이런 서비스를 소비자가 누리려면 정부가 불필요한 규제들을 철폐해야 한다.”

 -과외가 금지돼 있던 1980년, 서울대 본고사 시험에서 수석 합격한 뒤 “과외를 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해 공직에 있던 아버지가 옷을 벗었다는 얘기가 사실인가.

 “그렇다. 숙정당한 공무원은 3년 동안 민간기업 재취업도 할 수 없어 집안이 몹시 어려워졌다. 사법고시 준비를 일찍 시작한 것도 사실 그 때문이다.”

 -앞으로의 행보는.

 “일단 두세 달 푹 쉴 거다. 이후엔 금융권이나 다른 업종에 도전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구성원들의 행복 지수가 매우 높은 조직을 직접 꾸려 보고 싶다.”

 -그러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마음이 급하지 않나.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도 예순이 넘어서야 중공업 분야에 뛰어드는 등 그룹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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