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자본의 길잡이’란 오해를 사기도 했는데.
“사모펀드에 대해 확실히 알고 싶었다. 나같은 토종이 선진 금융기법의 핵심을 배운다는 건 우리 금융의 미래를 위해서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 아닐까.”
-어떤 것을 배웠나.
“세계적 투자 업체들은 수탁자 책임의식(fiduciary duty·고객이 아닌 자금 운용자의 이익을 우선하는 행위 금지)이 강하다. 투자 업체들이 이런 의식으로 무장하면 정부가 나서 굳이 규제를 할 필요가 없다. 또 인수한 기업의 가치를 높여 수익을 창출하는 게 품격 있는 투자다. 하지만 한국 투자자들은 여전히 ‘될성부른 매물’ 찾기에만 골몰한다는 느낌이다.”
-‘하나TV’를 통해 한국 인터넷TV(IPTV)의 초석을 놓았는데.
“하나로텔레콤은 종합통신기업임에도 매출의 60% 이상을 초고속인터넷 부문에 의존하는 취약한 구조였다. 하나TV라는 신사업을 통해 융합서비스 기업으로 거듭나려 노력했다. 서비스 초기에는 ‘매각을 위한 제스처일 뿐’이란 비아냥도 들었다. 이젠 80만 가입자를 확보한 회사의 성장 동력이다.”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가 국내 통신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통신시장에 변혁이 일 거다. SK텔레콤의 무선 서비스와 하나로텔레콤의 유선 서비스가 결합해 이전엔 볼 수 없던 컨버전스 서비스가 쏟아질 것이다. 이런 서비스를 소비자가 누리려면 정부가 불필요한 규제들을 철폐해야 한다.”
-과외가 금지돼 있던 1980년, 서울대 본고사 시험에서 수석 합격한 뒤 “과외를 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해 공직에 있던 아버지가 옷을 벗었다는 얘기가 사실인가.
“그렇다. 숙정당한 공무원은 3년 동안 민간기업 재취업도 할 수 없어 집안이 몹시 어려워졌다. 사법고시 준비를 일찍 시작한 것도 사실 그 때문이다.”
-앞으로의 행보는.
“일단 두세 달 푹 쉴 거다. 이후엔 금융권이나 다른 업종에 도전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구성원들의 행복 지수가 매우 높은 조직을 직접 꾸려 보고 싶다.”
-그러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마음이 급하지 않나.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도 예순이 넘어서야 중공업 분야에 뛰어드는 등 그룹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나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