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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칼럼>관철동시대 21.유창혁.이창호의 철옹성 공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힘과 기예가 절정에 이른 조훈현(曺薰鉉)9단이 세계제패를 향해 출진준비를 하고 있던 88년말,그의 배후엔 이미 두개의 강력한 칼날이 다가와 있었다.
방위병 유창혁(劉昌赫)3단이 대왕전(大王戰)에서 曺9단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얼굴이 하얗고 눈빛이 투명한「미소년」유창혁은 마치 봄날의 향기처럼 당대의 조훈현에게 다가왔다.曺9단은 퍼뜩 놀랐다.『많이컸구나』하고 생각할 무렵엔 어느덧 자신의 대마가 죽어있었다.
결과는 유창혁의 3대1승.아차하는 사이에 타이틀이 넘어갔다.
이건 보통 사건이 아니었다.72년 2단 서봉수(徐奉洙)가 조남철(趙南哲)9단을 꺾고 명인(名人)이 된 이래 꼭 16년만에 저단진의 반란이 성공한 것이다.
더구나 서봉수가 지는 태양을 꺾은 것이라면 유창혁은 중천의 이글거리는 태양을 꺾은 것이다.
「도전 5강」이 10년을 두고 도전했으나 결코 흔들리지 않았던 황제 조훈현의 철옹성을 마침내 유창혁이 허물었다.
훗날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 불리게 되는 유창혁은 이때 이미 독특한 자기의 바둑세계를 구축해놓고 있었다.투명한 봄빛처럼어른거리다가 여름 햇살처럼 강렬해지는 그의 행마에서 고수들은 누구나 「밝은 기운」을 느꼈다.『밝다』고 그들은 말했다.그는 바둑을 통해 세상의 음양(陰陽) 중 양의 영역을 대변하는 듯 보였다. 호기심 많고 정의감이 강했다.장성들의 목욕탕에서 근무하던 그는 불쑥 이런 얘기를 하곤 했다.
『힘있고 높은 사람들이 그렇게 시시한 얘기를 하고 사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유창혁에게 「일지매」란 별명을 붙여줬다.예쁜 얼굴의 의적 일지매-.
유창혁의 반란은 실로 대사건이었지만 잉창치(應昌期)盃의 흥분에 묻혀 조용히 사라졌다.
88년12월엔 이창호(李昌鎬)3단이 서봉수9단을 꺾고 최고위전에서 도전권을 장악했다.입단하던 86년엔 73%의 승률을 보이더니 87년엔 80%,88년엔 무려 88%라는 기적의 승률을보이며 승승장구해온 이창호가 드디어 서봉수의 벽 을 넘은 것이다. 89년1월 스승과 제자는 처음으로 도전기 무대에서 마주앉았다.결과는 이창호의 1대3 패배.아직은… 하는 분위기였으나 그 「1승」이 심상치 않았다.曺9단은 일찍이 『창호가 10년후쯤이면…』하고 변화의 시점을 예감했으나 불과 2년만에 성큼 다가온 것도 심상치 않았다.
89년2월 曺9단은 패왕전에서 또다시 이창호의 도전을 받았으나 3대0으로 일축했다.
하나 이창호와 유창혁은 과거의 도전세력과는 차원이 달랐다.그들은 지칠줄 모르는 밀물이었고 나날이 강해지고 있었다.이 해에曺9단은 이창호에게 9승2패.
曺9단은 배후의 위협을 잠시 잊고 89년4월 홍콩으로 갔다.
여기서 비행기를 타고 중국의 항저우로 가서 녜웨이핑(섭衛平)9단과 일전을 치러야 한다.잉창치배 결승전,한국바둑을 새로 태어나게 한 역사적인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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