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에서>순간속에 영원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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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 설날 귀경 고속도로에서다.
수시간째 정체 중에 뒷쪽에서「삐뽀,삐뽀」하며 요란스러워 돌아보니 커다란 견인차였고「고속도로 긴급차량」인가하는 이름표까지 붙이고 있어 황급히 차선을 바꿔 비켜주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 차가 아니라 뒤에서 오던 다른 승용차가그 기회를 놓칠세라 내가 비킨 자리로 재빨리 들어 왔고,그 덩치 큰 차는 조금도 나아가지 못한채 신호음만 울리고 있었다.뿐만 아니라 그 차가 조금이라도 빨리 전진하면 다른 차들이 부리나케 그 뒤로 몰려 드는 것이었다.그런 와중에서 우여곡절 끝에그 차가 앞쪽으로 가서 사고로 뒤엉켜 있던 차량들을 치운 뒤에야 우리들 모두는 제 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
그 일로 나는『저 차가 초를 다투는 서울시내의 소방차였다면,또는 스러져 가는 꽃다운 생명을 싣고 다급해 하는 구급차였다면우리들의 반응이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라는 등의 잡념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어째서 이런 따위 지체와 자충 (自充)을 자초하고 살아야만 할까.바빠서 그런 것임은 틀림없다.
그렇다.모두들 바쁘다.과거처럼 1년에 한번 생산물이 나오는 생산체제도 아니고,선거에 의해 뽑힌 공직자 역시 잠시후 닥칠 선거에 쫓기고 있으며,정보와 지식이 습득할 틈도 없이 쏟아져 나와 사람을 초조하게 한다.
그래서 모두들 그때 그때 임시방편이고,한탕주의이며,목전의 자기 일이 아니면 무엇에든 무관심한가 보다.
이와 같은 우리들의 황급한 삶은 500년,1,000년후 먼 미래에 어떻게 평가될까.
아니 이처럼 순간순간의 충격에 정신없이 떠밀리면서도 자연과 세계로부터 오는 이 엄청난 일거리들을 당장에나마 제대로 감당해나갈 수 있는 것일까.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를 매어 쓸 수는 없다.온 우주와 함께 영원을 사는 흔들림 없는 맑은 마음으로서만 순간에 명멸하는이 어지러운 현상들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시대 각 방면의 9단도 넘는 달인(達人)들께서도 머리 좀굴리지 마시고,부동(不動)의 원칙과 대도(大道)로 꿋꿋하게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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