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셔터 안 닫혀 인명 피해 커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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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냉동창고 화재는 방화문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대형 참사로 이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지방경찰청 수사본부(본부장 박학근 2부장·사진)는 15일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코리아냉동 측이 작업을 하면서 ‘오작동이 일어나면 불편하다’며 19호 냉동실과 1호 냉동실 사이 통로에 설치된 방화문과 스프링클러 등 방화 및 소화시설을 자동에서 수동으로 바꾸는 바람에 화재가 났을 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방화문에는 화염·가스감지 센서가 달려 있어 화재로 연기와 가스가 발생하면 1분30초 내로 방화문이 자동적으로 내려오며, 일단 내려오면 1시간 이상 화염을 견딜 수 있다. 따라서 이 방화문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방화문 안쪽에 있던 작업자 7명은 희생될 수밖에 없었지만, 방화문 밖에서 작업하던 33명은 대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수사본부는 이날 냉동창고 현장총괄소장 정모(41), 냉동설비팀장 김모(48), 현장방화관리자 김모(44)씨 등 3명에 대해 업무상 중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회사 대표 공봉애(47·여)씨도 창고 인·허가 비리를 비롯한 각종 의혹에 대해 조사한 뒤 혐의가 드러나는 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수사본부는 또 목격자 진술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현장 감식 등을 근거로 불이 처음 난 곳은 인명 피해가 가장 많았던 기계실이 아니라 냉동창고 주 출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13냉동실인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13냉동실 복도 앞에서는 인부들이 배관에 보온용 덮개를 씌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으나 용접 작업은 하지 않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따라서 화재 원인은 당초 알려진 용접 불꽃이 아니라 누전이나 작업자의 실화일 가능성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화재 전문가에게 화재 발생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정확한 화인을 밝혀줄 것을 의뢰했다.

 수사본부는 이번 참사의 원인이 소방시설 작동 불능, 현장관리 소홀임을 상당 부분 확인함에 따라 앞으로 냉동창고 인·허가 및 설계변경 과정에서의 비리, 하청업체의 안전관리 의무 소홀 등으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경찰은 현재 화인조사팀과 공사관계조사팀 등으로 수사팀을 나누어 코리아냉동 사무소에서 압수한 현금출납부와 회계장부 등 관련 서류들을 조사하고 있다. 수사본부는 이날까지 희생자 중 34명의 신원을 확인해 이 중 18명의 시신을 유족들에게 인도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다음 주 중반쯤 희생자 신원확인을 위한 유전자 감식작업이 마무리된다고 밝혔다.

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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