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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대학교>7.서울大 이모저모-동숭동 시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75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기 전까지 대학 본부와 문리대.법대.미대가 동숭동에 모여 있던 때를 흔히 「동숭동 시절」이라 부른다. 지금은 젊은이의 거리로 변해 버렸지만 아직도 많은 서울대인의 향수가 서린 이곳엔 의대 연건 캠퍼스까지 바로 인접해 자연스럽게 서울대 문화의 심장부가 됐었다.
동숭동 캠퍼스의 상징은「꿈의 나무」로 불리던 마로니에.문리대교정은「마로니에 광장」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대학로를 따라 흐르는 개울은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세느강」으로 불렸다.문리대 교정과 대학로를 연결하는 시멘트로 얽어맨 투박한 다리 역시 자연스럽게「미라보 다리」가 됐다.
대학로에 있던 다방으로 학생들이 즐겨 찾던 곳은 「학림(學林)」과 「낙산(駱山)」.문리대 쪽에 있던 학림은「문리대 제25강의실」로,법대.미대 쪽에 있던 낙산은「미대 제5강의실」로 각각 불렸다.당시 이들 다방은 서울대생 뿐만 아니 라 서울시내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다녀갔을 만큼 대학문화의 대명사였다. 60년대 대학가 술집의 대명사는 문리대 앞의「쌍과부집」과 문리대와 법대 사이에 있던「부로크집」이었다.대포 한 잔에 5원이었고 30원이면 술.안주에 점심까지 얻어 먹을 수 있었다.군사독재 시절 울분을 토로하던 장소로 자주 이용돼『학 생운동의 역사는 쌍과부집에서 시작돼 새세대사(당시 문리대의 학보사)에서끝난다』는 말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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