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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한국현대사>5.중진 資本主義論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일제시기 「공업화」와 한국경제 성장의 관련성에 대해 연구하는국내 경제사학자에게 나카무라(中村哲)교수의 『중진자본주의론』은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는 1987년 韓日학자 16명이 참여한「한국근대경제사연구회」를 결성해 한국의 경제사학자들과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이 연구모임에 참여한 사람이 모두 같은 견해를 가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그의 이론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측 학자를 대표하는 안병직(安秉直.서울대)교수는 그가 쓴『근대세계사상의 재구성』을 번역하기도 했다.이들은 그동안 도요다(豊田)재단등 일본자본의 지원을 받아『조선근대의 역사상』(1988),『조선근대의 경제구조』(1989)등의 연 구성과를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출간했다.
문제는 교류가 아니라 나카무라 교수의 근대를 보는 시각이 「식민지 미화론」으로 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한국경제가 해방후「신흥공업국」내지「중진국」으로 성장한데주목하고,그 토대를 형성했던 것은 일제초기의 토지조사사업,30년대 이후 공업화였다고 주장한다.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일제의 조선지배가 다른 제국주의국가의 식민지 지배와 비교해도 군사적.봉건적이기보다 오히려 전근대사회의 해체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식민지 자본주의를 육성한 새로운 형의 제국주의 지배였다고평가한다.
이러한 주장은 결과적으로 우리 민족이 일제시기 줄기차게 전개한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부정하고 있다.일제 식민정책이 한국사회에유익했다고 한다면 그것에 반대한 반일투쟁은 시대착오적 운동이 될 수밖에 없다.반대로 친일세력은 역사의 진보를 수용한 세력이된다. 또 「중진국」이 되는데 토대가 됐다고 주장하는 토지조사사업(1912~1918)은 원래 한국을 자본주의화하기 위해 착수한 것이 아니라 한국농민을 효과적으로 수탈하기 위해 실시한 것이다.일제 식민정책에 따라 자본주의적 변화가 나타난 것은 부정할 수 없다.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제의 필요에 의해 이뤄진 식민지 경영의 부차적 산물에 불과했다.
처음 중진자본주의론은『조선사회의 역사적 발전과 그 내부구성의변화를 중시할 것』을 강조했다.그러나 결론은 조선의 자본주의적근대화를 위해 일제식민정책이 필요불가결했고 한국경제가 중진국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는「식민지 미화 론」으로 귀결됐다. 주종환(朱宗桓.前 동국대)교수는『중진자본주의론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가지고 있는 수탈이라는 측면을 교묘하게 정당화시키고 있다.이것은 형태만 바꾼 식민사관』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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