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왜 세계 각국은 작은 정부에 눈 돌리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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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새 정부는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작은 정부를 지향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정문. [중앙포토]

 #1. 학생들은 감독관 없이 시험을 공정히 치를 수 있을까.

 #2. 축구 심판이 지고 있는 팀을 돕기 위해 경기에 직접 참여하면 어떻게 될까.

 정부가 시장에 어느 선까지 개입해야 하는지를 따질 때 자주 제기되는 질문이다. 이때 시험장과 축구 경기장은 시장을, 감독관과 심판은 정부를 비유하는 말이다.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것은 마치 심판이 경기에 직접 뛰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 것은 감독관 없이 시험을 치르는 상황에 견줄 수 있다.

 정부(政府)를 뜻하는 government는 ‘방향타를 조종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정부가 ‘조종자’ 또는 ‘심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전통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정부조직을 줄이고 일부 기능을 민간에 맡길 것”이라고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부가 시장 개입을 가급적 줄여 ‘시장의 효율성’을 최대한 살리는 데 초점을 둔다는 의미다. 큰 정부와 작은 정부가 등장한 배경과 문제점을 알아보고, 많은 국가가 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지 공부한다. 작은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도 짚어 본다.

 ◆‘작은 정부’의 등장=작은 정부는 산업혁명 이후 근대 자본주의가 형성되던 18~19세기 ‘산업 자본주의’ 시대에 등장했다.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1723∼1790)가 주창한 ‘보이지 않는 손’이 이를 뒷받침했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보장되면 보이지 않는 손이 자원과 자본을 최적으로 분배한다는 게 스미스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중립적 조정자 역할에 머무는 작은 정부가 최선으로 여겨졌다. 심지어 스미스는 “국가는 필요악이다. 유지 비용이 적게 드는 정부가 이상적이다”라고 말했다. 작은 정부가 ‘값싼 정부’ ‘최소한의 정부’ ‘야경국가’ ‘자유방임 국가’로 불리는 이유다.

 ◆‘시장 실패’와 ‘큰 정부’의 탄생=시장 기능이 강화될수록 자원과 자본은 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게 시장주의자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특정 자본이 생산과 시장을 지배하는 독점 자본의 폐해가 나타난 것이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현상도 발생했다. 1929년 미국에서 발생한 경제 대공황이 바로 그 예다. 대공황은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해 생겼다. 공급 부족 또는 공급 과잉은 자원이 제대로 배분되지 못한 결과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시장 실패’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론적 배경은 영국의 경제학자 존 케인스(1883∼1946)가 제공했다. 케인스는 “수요가 부족하면 생산이 줄고 대량 실업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공공사업을 벌여 소비자의 구매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대공황 당시 ‘뉴딜 정책’을 통해 대규모 공공사업을 추진했다.

 이처럼 정부는 시장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자원 배분, 경제 안정화 정책 등을 펴며 시장에 깊숙이 개입했다. 정부 기능과 역할도 자연스레 커졌다. 작은 정부에서 큰 정부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정부 기능이 강화된 경제 체제를 ‘수정 자본주의’ 또는 ‘혼합경제’라고 하며 큰 정부를 ‘복지국가’ ‘행정국가’로 부른다.

 ◆‘정부 실패’와 작은 정부로 회귀=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한 결과 자원과 자본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되는 부작용이 생겼다. 불필요한 시장 규제나 지나친 관료주의 등 정부의 비효율성이 그 원인으로 지적됐다. 이른바 ‘정부 실패’가 발생한 것이다.

 정부 실패의 대표적 사례는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이는 경기 침체에도 물가가 오르는 현상으로 1970~80년대 ‘석유 파동’ 때 처음 나타났다. 큰 정부는 통상적으로 호경기에 물가가 상승하면 경기 안정 정책을, 불경기에 물가가 하락하면 경기 부양책을 썼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은 이 ‘공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이에 따라 시장 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주목받게 됐다. 작은 정부가 재부각된 것이다. 이런 경향을 ‘신(新)자유주의’ ‘신보수주의’ ‘뉴라이트’라고 한다. 작은 정부는 일반적으로 공기업의 민영화, 규제 완화, 조세 감축 등의 정책을 시행한다. 시장 기능을 되살려 경제 성장을 높이기 위해서다. 1970~80년대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편 게 대표적이다.

 ◆작은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용덕 교수는 “이번 대선에서 대다수 국민은 작은 정부를 택했다”며 “이는 복지 혜택을 덜 받더라도 시장의 효율성을 높여 일자리를 늘리는 게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럼 작은 정부 체제에서 소외되는 계층은 어떻게 해야 할까. 행정 전문가들은 시민사회 공동체를 대안으로 꼽는다. 기업과 작은 정부가 자칫 외면할 수 있는 사회 문제를 시민사회 공동체가 맡을 수 있다는 얘기다. 종교 단체가 운영하는 미혼모 보호센터가 바로 그 예다.

이 때문에 정부·기업·시민단체 협력은 작은 정부의 빈 공간을 메우는 필수요소로 여겨진다. 이와 함께 작은 정부라도 정부 실패와 시장 실패를 함께 고려하는 조화로운 사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장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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