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지하도 노숙인 '종이박스 집' 재등장

중앙일보

입력

오세훈 서울시장의 눈에 띄어 지난해 초 철거됐던 서울 태평로 '덕수궁 지하도'의 '종이박스 집'들이 최근 속속 모여든 노숙인들에 의해 재건(?)됐다.

14일 서울시에 따르면 태평로를 가로질러, 서울시청과 서울시의회를 잇는 이 지하보도는 지난해 3월15일부로 '노숙자율금지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지난해 2월 오 시장이 시의회 본회의에 참석하던 길에 '정비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후 시는 중구에 요청해 이곳을 노숙자율금지구역으로 지정토록했다.

시는 "덕수궁 지하도를 노숙자율금지구역으로 지정한 것은 상담을 통해 노숙인들의 쉼터 입소를 유도하기 위해 시행한 조치"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노숙자율금지구역이라는 용어에 익숙치 않았던 시민들은 "시의원과 시간부 등 '높은 분'들이 다니는 데 거슬려 그런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문제는 최근 이곳에 다시 노숙인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점. 저녁시간이면 종이박스로, 찬 바람을 막아줄 박스 집을 짓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한 시민은 "노숙인들의 처지가 이해되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지만, 지하도라는 특성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며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또 다른 시민은 "노숙인들의 자립을 위해 서울시가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하는데, 노숙인이 줄어들지 않는 것은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는 뜻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편 시가 집계(2007년 9월말 현재)한 서울시내 노숙인은 총 2997명으로 이중 2392명이 보호시설에 입소해 있으며, 605명 정도가 서울역 등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지난해 11월부터 거리 노숙인들의 겨울철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동절기 노숙자 특별보호대책'을 마련, 시설입소를 유도하고 있다.

특히 쉼터 등 보호시설로의 입소를 원하지 않는 노숙인들에게도 일정한 소득원을 제공, 쪽방이나 고시원으로라도 들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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