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당선인, 보름간 만든 인수위 보고서 질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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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 보고회에 참석한 뒤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점심을 도시락으로 해결하며 4시간40분에 걸쳐 진행된 이날 보고회에서 이 당선인은 “이 정도 보고서는 베테랑 국장이 한두 시간이면 만든다”며 보고 내용에 대해 질타했다. [사진=오종택 기자]

 “이 정도 보고서는 국회 가서 보고해 본 베테랑 부처 국장이면 1~2시간이면 만들겠네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보고한 1차 종합업무보고서에 대해 가혹한 평가를 내렸다.

 4개 분과위와 1개 특위에서 155개 국정과제를 선정, 종합한 보고서를 본 뒤 기대에 못 미친다는 듯 농담을 섞어 핀잔을 준 것이다. 그러자 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이 머쓱한 표정으로 “국장도 한 시간에는 힘듭니다”라고 말을 받았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 당선인은 “보고서를 보니 인수위원들이 고생 많이 했다는 것은 알겠다”며 “하지만 새 정부가 표방한 국정운영 방향이 ‘창조적 실용주의’인 만큼 보다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탁상공론보다 고객 수요와 현장 확인을 중시하는 최고경영자(CEO)형 리더십이 엿보인다.

 실제로 이 당선인은 4시간40분 동안 ‘경제 분야→비경제 분야’ 순서로 보고를 받으면서 국정과제별로 자신이 평소 생각해온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이러느라 이 당선인과 인수위원들은 점심식사도 낮 12시40분쯤 배달된 도시락으로 때웠다. 한 참석자는 “인수위원과 전문위원 80여 명이 지난 보름 동안 만든 보고서보다 이 당선인의 아이디어가 낫더라”고 말했다. 이 당선인은 “앞으로 주 1~2회 간사회의에 참여해 함께 협의하겠다”며 회의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관련화보]인수위 1차 업무보고

 다음은 참석자들의 증언으로 재구성한 이 당선인의 주요 발언록.

 ▶유류세 인하 관련=“유류세 인하하면 큰 차 타고 돌아다니는 사람들한테만 혜택이 가는 것 아니냐. 차로 영업하는 서민들이나 경차 모는 사람들한테 혜택 돌아갈 방법을 집중 고민하라.”

 ▶통신료 인하 관련=“문제가 많이 쓰는 건지 요금체계인지, 아니면 독과점인지 알아야 한다. 일단 연령대별 사용량 통계부터 만들어라. 할인을 해도 이걸 바탕으로 해야 한다. 무작정 내리면 그만큼 더 쓸 수 있으니 대책도 생각해야 한다.”

 ▶부동산 관련=“집값이 오르는 건 무조건 막아야 한다. 그리고 요즘 모델하우스 가보니 마감재를 독일제로 쓰더라. 미국제만 써도 원가가 공개되니까 그러는 모양인데 이런 꼼수 없이 투명하게 진행되도록 하라. 우리 기술도 마감재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관광수지 관련=“관광수지 개선 방안을 관광협회 사람들과 백날 얘기해 봐야 답이 안 나온다. 관광협회는 우리 관광객을 외국으로 내보내야 이익 남는 사람들 아니냐. 발상 전환을 하라.”

 ▶교육개혁 관련=“국민 오해를 풀어라. 특히 공교육 강화 방안이 부족하다. 그러니 사람들이 사교육 천국이 될까 걱정한다. 입시 자율화 3단계도 이해하기 힘들다. 정말 학부모 입장에서 마음에 와 닿도록 준비하라.”

 ▶농협 관련=“전국을 다녀보니 일모작인 한국에서 농가마다 농기계가 있더라. 농기계 사느라 융자받고 그러다 고장 나면 또 못 쓰고… 농기계회사만 좋은 일 시킨다. 농협이 소유한 농기계를 대여해주면 좋을 것 같다. 지역적으로 남에서 북으로 돌려쓸 수 있을 거다. 아예 농기계 기술자까지 붙여 빌려주면 농민들이 다른 부가가치 높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다. 농기계 업체는 삼모작 하는 중국 같은 시장을 개척하면 된다.”

글=남궁욱 기자 ,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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