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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잇던 출판기념회 10일부터는 ‘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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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 건물 주변에 그어진 주차 라인에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차들이 몰렸다. 하루 종일 의원들의 출판기념회가 이어졌기 때문.

오후 2시 민주당 손봉숙 의원의 출판기념회에는 300여 명의 인사가 몰렸다. 행사장 입구에는 손 의원이 속한 국회 문화관광위 유관 기관인 강원랜드ㆍ한국예술종합학교ㆍ한국방송위원회 등의 기관장 화환 20여 개가 놓여 있었다. 같은 시간 바로 옆방에서는 통합신당 우윤근 의원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오후 4시에 열린 통합신당 임종석 의원 출판기념회에는 600여 명이 몰렸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을 비롯, 손학규ㆍ김근태·김원기ㆍ한명숙씨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런 식으로 지난 연말부터 열린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는 100여 건에 달한다.

총선 출마설이 나돌던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도 7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처럼 선거를 앞두고 열리는 출판기념회는 형식만 책 출간 기념식일 뿐 사실상 총선 출정식을 방불케 한다.

8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안희정씨의 출판기념회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보낸 영상 메시지가 상영됐다. 노 대통령은 “책도 책이지만 안희정씨가 세상으로 나간다는 것을 알린다는 자리라는 점에서 가슴이 설렌다”고 말했다. 행사장에 온 이해찬ㆍ유시민ㆍ이광재 의원 같은 친노 의원들은 일제히 “이번 선거에서 꼭 당선되길 바란다”며 덕담을 쏟아냈다.

이같이 정치인들이 내는 책 중 상당수는 전업작가의 대필로 쓰여진다는 게 출판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일부 정치인들이 출판사를 통해 1000만∼3000만원 정도를 전업작가에게 주고 자신의 신변잡기를 정리한 책을 써달라고 의뢰하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펴내는 책들은 무명출판사에서 내는 것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일반 서점에는 입고도 되지 않는 이벤트용 한정판도 많다”고 소개했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이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은 지지자를 모으고 얼굴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지만 ‘선거용 실탄’을 마련하는 데에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출판기념회에서 책값만 내고 가는 경우는 드물다. 한 정부 산하단체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관련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 출판기념회는 꼭 챙긴다”면서 “1만원 하는 책을 3∼4권 집어 오지만 돈은 30만∼40만원 정도 내고 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관행은 엄연히 불법이다. 책을 정가보다 비싸게 사면 정치자금법(제2조) 위반, 싸게 사거나 증여받으면 공직선거법 위반(제113조)에 해당한다.

연초부터 여의도를 떠들썩하게 했던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도 9일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선거법에 따라 선거일 9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는 후보자와 관련된 저서의 출판기념회가 일절 금지되기 때문이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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