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달라질 것… 총리로 박근혜 추천 반대 안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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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시기와 방법을 둘러싼 한나라당의 내부 갈등이 심상치 않다. 박근혜 전 대표가 계파 의원들과 만찬 회동을 하고 ‘투쟁 의지’를 다지던 지난 10일 이명박 당선인 측의 핵심 인물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을 만났다. 지난해 11월 박 전 대표 측을 향해 “좌시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했다 역풍을 맞고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난 그는 의원회관에서 한 인터뷰에서 “이젠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전 최고위원은 “갈등과 투쟁의 역사는 지난 대선으로 끝내려 한다”면서 “나를 정쟁의 한가운데로 끌고 들어가도 가만히 있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를 총리로 임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나는 박 전 대표가 총리에 추천된다고 해도 반대하지 않겠다. 과거는 미래의 경험일 수 있지만 미래의 걸림돌이 될 수는 없다. 이제는 과거를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화해와 포용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 내 43년 투쟁의 역사는 지난 대선으로 끝났다. 이제는 섬김의 역사를 만들려고 한다. 내 마음은 이런데 아직도 나에 대한 반대론자들은 나의 민주화 운동 전력을 문제삼고 있다. 개인과 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 태도다. 남이 생각을 전환할 때는 받아줄 수도 있어야 한다.”

-박 전 대표 측에서 다시 비판에 나선다면 어떻게 대응하겠나.

“저쪽에서 뭐라 해도 대응하지 않겠다. 나를 또 다시 정쟁의 한가운데로 끌고 들어가도 가만있겠다. 나는 입장을 정하기 전까지는 많이 고뇌하고 방황하지만 일단 입장을 정하면 거기에 충실한다. 내가 말한 토의종군(土衣從軍)의 철학도 권력을 휘두르기보다는 섬기는 자세로 포용하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서운한 것으로 말하면 누가 누구에게 더 서운하겠나. 1965년 한·일회담 반대로 학교에서 제적되고,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기 전까지 내 인생을 보라. 내 마음속에 쌓여 있던 과거를 화해를 통한 포용으로 안고 가겠다. 내 마음에 투쟁의 씨앗을 키우는 게 아니라 쌓이고 쌓였던 분노와 서러움을 녹여서 포용하겠다. 내가 오늘 각본에 없는 얘기를 많이 한다.(웃음)”

-4월 총선을 의식해 충청 출신 총리를 임명하자는 움직임도 있는데.

“당선인의 고유 권한인 인사 문제는 언급하지 않겠다. 단 충청권 민심이 중요하다면 일을 통해 풀어야지 그 지역 인사를 기용하는 방식은 구시대 발상이다. 일을 통해 그 지역 이해관계를 풀어주는 게 맞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으로 인사를 해야 하나.

“노무현 정부는 과거 청산으로 출발했다. 나도 민주화 운동을 했지만 이제 과거는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화해의 대상이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총리 인선, 내각 인선도 넉넉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미래시대에 동참할 의지만 있다면 과거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다.”

-한나라당이 공천 문제로 시끄러운데 어떤 기준으로 공천이 이뤄져야 하나.

“또 (공천 문제를) 말했다가는 이번엔 사퇴할 당직도 없으니 정계 은퇴하라고 나올 거다. 그래도 당원 입장에서 말한다면 18대 총선 전략의 최대 목표는 이명박 경제 대통령이 일할 수 있도록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것 아니겠느냐. 어떻게 하면 이 목표 달성이 가능할지 잘 연구 검토해 보면 해답이 나온다.”

-과감하게 현역 의원을 물갈이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더 이상 말했다가는 공격받는다. 신변의 위협이 있을 수도 있다.(웃음) 중국 고전에 나오는 ‘부재기위 불모기정(不在基位 不謀基政)’이란 말로 대신하겠다.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문제는 얘기하지 말라’는 뜻이다.”

-박 전 대표 측은 조기 공천을 요구하고 있는데.

“언제 공천을 하는 것이 득표에 도움이 되는지가 중요하다. 어차피 이번 총선은 이명박 브랜드로 치르는 선거다. 이명박 정부의 신뢰도가 가장 높을 때가 공천의 적기 아니겠나. 참고로 아직 정치개혁특위가 선거구 획정도 안 했다. 비례대표 수를 늘릴지 줄일지도 결정 안 됐다.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돼야 공천도 하는 것 아닌가. 공천 시기를 늦추자는 당선인의 생각은 누구를 공천에서 배제하거나 공천을 독식하자는 차원은 아니다.”

-공석 중인 한나라당 최고위원직을 놓고 정몽준 의원과 경합설이 나온다.

“내 입장은 이런 거다. 내가 최고위원을 그만둘 때의 정치적 상황은 끝났다. 한나라당 경선 이후 박 전 대표가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서지 않는 것이 이재오 때문이라는 말이 많았다. 또 박 전 대표 쪽에서 내 사퇴를 요구했었다. 그래서 내가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위해 물러났다. 이제 대선의 갈등 국면은 끝난 것 아니냐.”

-최고위원직에 도전하겠다는 뜻인가.

“선거 때 일어났던 갈등을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이재오가 원상 복귀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전국위원회를 통해 새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만큼 (내가 나간다면) 이재오에 대한 신임투표가 될 것이다. 지금 최고위원의 균형이 계파로 따지면 박 전 대표를 지지했던 사람이 수적으로 더 많다. 그러니 당내 힘의 균형과 공천을 위해 이재오가 원상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출마를 말리는 사람도 있다. 이재오가 박 전 대표 제1의 공적이기 때문에 (내가 나가면) 당내 갈등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최고위원 한 번 하지 않았느냐’ ‘어차피 총선 이후 정기 전당대회가 열리는데 뭐 하러 나가느냐’고 말리기도 한다. 좀 더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하겠다.”

-러시아 특사로 파견되는데 어떤 일을 하게 되나.

“러시아의 찬바람 좀 쐬고 오겠다. 러시아 당국과 가스와 석유 같은 자원 공동개발 문제를 논의하려고 한다. 3년 후 재도전할 겨울올림픽 유치와 관련해서도 협조를 부탁할 생각이다. 이명박 당선인의 취임식 전야제에 러시아 음악인들도 초청할 생각이다. 극동지역에 흩어진 한인 교포들의 문제도 논의하고, 한국의 독립운동지 보존 문제도 의논할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선 이유는 뭔가.

“나는 이명박 후보 당선을 위해 전당대회에서 뽑아준 최고위원까지 던졌다. 선거 후에는 내 편이라고 볼 수 있는 국가발전전략연구회도 해체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당선인의 중요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의 신념과 철학을 바닥에서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나선 것이다. 운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현장 한번 가보고 얘기하라. 버려지고 황폐하고 오염된 부지를 친환경적으로 복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의 복원이고 문화의 복원이다. 군사 독재시대의 애국이자 시대정신이 민주화 운동이었다면 지금 이 시대에는 운하 건설이다. 운하는 대한민국 역사를 다시 쓰는 작업이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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