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콜금리 동결 … 그래도 계속되는 금통위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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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콜금리 동결은 이미 예상됐던 결정이다. 그런데도 10일 오전 9시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평소보다 20분쯤 시간을 더 끌었다. 새해 들어 처음으로, 또 대통령 선거 이후 처음 열린 회의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짚어보고 고민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과 8월 두 달 연속 콜금리를 인상했던 금통위는 9월부터 다섯 달 연속 콜금리를 5.0% 수준에서 유지했다. 연초부터 물가가 뛰고 있지만 국내외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곧바로 금리를 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금리 동결이 어떤 효과를 내느냐, 과연 옳은 결정이냐 하는 것은 시장의 관심사가 아니다. 한은의 금리정책이 새 정부 출범 이후 어떤 식으로 방향을 잡느냐, 이를 놓고 한은은 어떤 입장이며 무슨 고민을 하느냐가 더 큰 관심거리다.

우선 고성장과 물가 안정을 동시에 내건 새 정부의 경제정책과 한은의 금리정책 사이의 온도 차가 논란거리다. 사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던지는 정책방향엔 간혹 상충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은이 물가도 잡고 고성장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주문엔 무리가 있다(경제 원론에 따르면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고, 경기에 불을 지피려면 금리를 내려야 한다). 부동산 가격 안정에 한은도 나서야 한다는 말은 한은의 통화정책에 대한 이해 수준을 보여주기도 한다.

9일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업무보고에서) 한은도 거시경제 안정을 위해 필요한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말하면서 “통화량의 지나친 조절이 경기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도 했다. 한은에 큰 딜레마를 던져준 셈이다.

이에 대해 이성태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 한은과 상충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성장률을 높이겠다는 게 한 해, 두 해 높이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높이려면 경제가 안정돼야 하고,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을 맡고 있기 때문에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서 한은의 자세나 사명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7% 성장률을 내건 새 정부와 물가 안정을 우선시하는 한은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형성될 것이라는 우려를 의식한 발언이다.

한은의 고민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요즘 물가가 성큼성큼 오르고 있지만 한은이 정책금리를 동원해 틀어막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원유나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오른 물가나, 규제 탓에 생겨난 고물가는 금리로 풀기 곤란하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최근의 물가 상승은 금리 정책으로 막기 어렵다”며 “한은이 상반기에 금리를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꾸준히 상승하는 시중 금리도 한은을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 일단 지표상으로는 시중 자금사정이 빡빡하진 않다. 2007년 11월 말 광의유동성(L) 잔액은 2038조6000억원이다. 8월부터 4개월 연속 20조원대의 증가세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시중금리가 오르는 것은 고수익을 좇아 돈이 은행권을 벗어나 펀드나 수익증권 등으로 쏠렸기 때문이라고 한은은 분석한다.

이 총재는 지난해 두 차례 콜금리를 올린 효과가 아직 남아 있고, 자금의 쏠림 현상이 나타난 데다 국제적 요인으로 물가가 뛰고 있다는 점을 시중 금리 상승의 3대 원인으로 꼽았다. 시간이 지나 이 변수들이 잠잠해지면 시중 금리가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낙관도 했다. 이런 분석을 근거로 금통위는 지금은 금리를 거시경제 조절 수단으로 삼을 때는 아니라고 판단한 듯하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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