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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때 밀항 화학공장 세운 申永淑옹 지진으로 잿더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재일동포 신영숙(申永淑.82)옹은 불탄 나가타(長田)區 공장터로 돌아와 시커멓게 그을린 고무 압출기계를 쓰다듬으며 작은 소리로 넋두리했다.
『지난 30년동안 우리 가족을 먹여살리고 돌봐준 것 고맙데이.잘 가거래이…』 20세때 맨몸으로 밀항했던 申노인이 평생을 바쳐 세운 종업원 1천명의 큰 공장인 대우(大祐)화학.
일본인의 모멸속에 시다로,기능공으로 보낸 30년,그리고 다시성공한 신발공장 사장으로 지내왔던 그후의 30년- 그 60년이단 1분동안 들이닥친 지진으로 무너져내렸다.
한동안 눈시울을 붉히던 申옹은 임시 수용소인 현립 체육관으로돌아와 고개를 묻고있는 아들의 어깨를 잡았다.이미 10년전에 장남에게 공장을 물려준 그였다.
『공장은 괜찮다.사람이 살아났으니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여.』 그는 이미 40대 중반이 된 아들에게 지나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밀항한뒤 몰래 숨어든 신발 공장,언제 법무성 단속반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시다 시절의 불안감,마침내 불법체류로 체포돼 끌려간 오무라(大村) 감옥살이….申옹의 이야기는 참담했던 사업 실패와 수시로 찾아드는 야쿠자의 횡포에 대항했던 무 용담으로 이어졌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맥없이 풀어졌던 아들도 고개를 세웠고 뒤척이던 사람들도 귀를 기울이다 하나둘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전기도 나가버린 강당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로 사람의 윤곽을 잡을 즈음 누군가 申노인에게 물었다.
『언제 또다시 지진이 올지도 모르는데 고베(神戶)를 떠나야되지 않겠습니까?』 『무슨 소리하는 것이여,어떻게 버텨온 나가타에서의 삶이었는데….이제 죽어도 여기서 죽어야지.』 싸늘한 체육관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가장 약한 申옹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준,가장 강했던 사람 또한 바로 그였다.
[고베=郭在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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