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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못잊을 ‘20달러의 사랑

중앙일보

입력

▶‘이런 기분 좋은 인연이 있나’. 새해 첫날 길을 잃고 헤매던 전창애 할머니(맨 오른쪽)와 딸 전홍자(맨 왼쪽)씨가 그날 ‘천사처럼’ 보살펴준 리커스토어 업주 유성열씨 부부(가운데)와 다시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세상사는 재미가 바로 이런 것 아닌가. <전한 기자>

새해 첫날 이미 어두워진 오후 7시쯤 이스트 LA의 한 거리.

60대 중반의 한인 할머니가 90세가 넘는 노모의 손을 꼭 잡은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버스를 잘못 탔다는 생각에 무작정 내렸다가 벌써 1시간째 거리를 헤메던 터였다. 앞이 캄캄했다. 손에 든 것은 동전 몇닢뿐.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코리안? 코리안?"만 외쳤다.

지팡이에 의지한 전창애(91) 노인 그리고 딸 전홍자(65) 모녀는 낯선 거리에서 두려움에 떨며 도움을 청했으나 아무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길 두어시간. 누군가가 손가락을 가리키며 '코리안 마켓'을 알려줬다. 다시 두 블록쯤 걸었을까.

심신이 지친 두 모녀는 비틀거리며 한 가게와 맞닥뜨렸다. 바로 유성열(61)씨가 운영하는 작은 마켓이었다.

두 노인은 유씨를 향해 "코리안이냐"고 물었고 유씨는 직감적으로 두 노인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 수있었다.

두 노인 모녀는 한인타운서 차이나타운으로 콩을 사러갔다가 돌아오면서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길을 잃은 것이었다.

"처음에 두 분을 뵈니 집에 계신 제 어머니가 생각나더라구요. 무조건 도와드려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유씨는 우선 두 노인을 안심시킨 후 곧바로 택시를 불렀다. 그리고 택시가 도착할 때 까지 1시간여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지팡이에 의지한 어머님을 모시고 몇시간을 헤맸는지 몰라요. 게다가 영어도 안되니까 말은 안통하지, 날씨가 어두워지니까 눈물이 다 나더라구요.”

딸 전홍자씨는 너무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씨는 택시가 도착하자 기사에게 다시 한번 주소를 확인하고선 할머니 손에 “택시비로 쓰세요”라며 20달러 짜리 지폐 한장을 쥐어드렸다.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더라도 다 도와줬을 거예요. 큰 일 한 것도 아닌데요….”

주는 사람은 작은 것처럼 보여도 받는 사람은 두배, 열배로 느끼는 것이 바로 ‘사랑’. 두 노인 모녀에게 평생 잊을 수없는 사랑을 심어준 ‘20달러의 힘’. 무진년 새해 벽두에 전해진 ‘작은 사랑의 스토리’가 벅찬 감격으로 우리의 가슴을 파고 든다.

ryan@koreadaily.com
장열 기자
[USA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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