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민영화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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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민영화하기로 한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곽승준 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은 7일 “산업은행의 투자은행(IB) 부문을 떼어 대우증권과 합친 뒤 매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수위는 산은의 투자은행 부문과 합쳐진 대우증권을 국내 자본에 팔아 토종 투자은행으로 성장하게 유도할 계획이다. 투자은행 분야는 산은 업무의 80%를 차지한다. 산은 업무의 20%를 차지하는 정책금융 부문은 그대로 남는다. 민영화 작업은 향후 5년간 3단계로 진행할 계획이다.

곽 인수위원은 “산은을 민영화해 받은 약 20조원으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투자펀드(KIF:Korea Investment Fund)를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인수위는 산은의 민영화 방침을 발표하면서 이명박 당선인 취임 초기에 속전속결로 공기업 민영화를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동안 각종 저항과 이해관계 때문에 지지부진했던 공기업 민영화를 확실히 하겠다는 의지다.

이 당선인이 산업은행을 첫 민영화 대상으로 꼽은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중소기업 지원기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 당선인은 지난해 11월 중소기업 초청 강연회에서 “산업은행과 같은 국책은행을 팔아 중소기업 지원기금을 마련하겠다”는 공약을 설명했다.

 인수위 관계자는 “국책은행을 판 돈으로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당선인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는 민간의 경쟁 영역을 확대해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다. 그동안 산업은행은 민간 은행과 경쟁을 하면서 특혜를 누려 마찰을 빚었다. 예컨대 회사채 인수 시장에서 산은은 정부의 지원 아래 시장점유율을 20% 넘게 불렸다. 벤처투자에서도 ‘큰손’으로 군림했다. 존립 목적을 다한 국책은행이 새로운 사업을 벌이며 민간 영역을 끊임없이 침범해온 것이다.

인수위 관계자는 “본래의 사명을 다한 공기업을 없애야 민간에 활력을 줄 수 있다는 게 당선인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공룡처럼 커진 산은의 투자은행 부문을 국내 자본에 팔면 제대로 된 토종 투자금융회사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연구원 김동환 실장은 “산은을 민영화를 할 때 공적인 부문과 민간 부문을 딱 잘라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양자를 분리하는 작업을 체계적으로 해야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산은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기업은행의 민영화와 정부가 소유한 우리금융지주의 지분 매각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인수위는 기업은행도 민영화하되, 중소기업 금융이 위축되지 않도록 보완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다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금융지주 지분 78%도 조기에 팔 계획이다.

 노무현 정부도 산업은행과 같은 금융 공기업 민영화를 여러 차례 추진했지만 매번 용두사미에 그쳤다. 지난해 9월에는 산은의 IB 부문을 분리한 뒤 매각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지만 시기를 정하지 않아 민영화가 지지부진했다.

김종윤·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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