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찬삼 訪北취재기 "凍土잠행"을 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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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3년전 한 세미나에서 某총리가 평양을 다녀온 후『김일성(金日成)과는 남북대화나 정상회담이 안되겠더라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필자는『평양을 가 보고서야 그것을 알았는가.나는 해방직후 반탁(反託)학생운동 시절부터 소련의 괴뢰인 김일성의 실체와공산주의의 본질을 알았고 필경 북한은 오늘날과 같은 상황이 될것이라 예견했다』고 응수한 적이 있다.오늘의 위정자들이 늦게나마 깨달았다면 다행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해방정국과 6.25를 겪은 세대는 나름대로 공산당의 수법과 김일성집단의 반민족적.비인간적 속성에 대해 경각심을 늦추지 않고 살아왔다.그것이 바로 우리 대한민국의 번영을 이룩했고 과거반세기동안의 자유를 수호해 온 중추세력이요,원동 력이라고 필자는 확신하고 있다.
그런데 6.25전후(戰後)세대가 자라 사회 주요 부문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그러한 경각심이나 안보의식은 점점 희미하게 되고심지어는 김일성을「민족의 태양」으로 떠받들려는 북의 선전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우리 대한민국의 안정된 발전을 뒤흔들어 놓은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최근 이찬삼(李讚三)시카고 中央日報편집국장의 북한잠행기는 우리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많은 것을 뉘우치게 했다. 그의 말대로 동포애의 발로로 북한의 실상을 알기 위해 목숨을 건 행동임에 틀림없다.그 용기에 우리는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고 그는 기자로서의 세계적인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李국장의 뼈아픈 기록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세가지 대목이 있다.
첫째는 평양이라는 정치전시장과 기타 지방의 생활은 굉장한 차이가 있고 특히 농촌의 생활고는 인간으로서 차마 볼 수 없는 비참한 형편이라는 것이다.그러면서도 북한동포들은 그들보다 월등히 잘 살고 있는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이 된다면 남한 사람들의경제적 노예가 된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신격화된 김일성 통치세력과 일반주민과는 분명히 구분해우리 국민은 북한 전체를 싸잡아 적대시 말고 북한의 불쌍한 주민들을 사랑으로 대해야 할 자세를 가지라고 충고한 대목이다.
셋째로 북한주민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전의(戰意)는『우리는 美제국주의와 남조선 괴뢰의 북침위협 때문에 여태껏 굶주리고고생해 왔다.덕분에 이제는 한방이면 전 세계를 꼼짝 못하게 할무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핵을 뜻함).그러 니 배고파 죽거나 싸워 죽거나 이판사판 한번 붙어보자』며똘똘 뭉쳐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정통성으로 똘똘 뭉치기는 커녕 6.25라는 민족의 비극조차 망각한채 그동안 우리 위정자들은 김일성을 선의의 동반자니,탈냉전이니,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북을 자극하지 말고 경제협력만 해야 한다느니,연방제 통일을 위해서는 김일성을 지원해 그 체제를 통해서만이 통일이 가능하다느니,흡수통합을 절대 반대한다느니,평양을 통일의메카같이 여겨 김일성 면담을 앞다퉈 간다느니 해왔다.
이는 북한의 통치세력이 원하는 전략 그대로 맞아 떨어진 결과를 빚어냈으니 통일문제가 올바르게 진척될리 없었다.우리 민족진영이 꾸준히 주장해온대로 북한의 동포를 지원하고 공포와 기아에서 구출하기 위해서는 전범(戰犯).반민족(反民族) 의 포악한 김일성왕조를 제거해야만 한다는 논리가 李국장이 말한 북한 전체주민까지 적대시하지 말라는 충고와 일치함을 확인해주었다.북한주민은 아사(餓死)지경임에도 불구하고 이판사판으로 싸우겠다고 덤비는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국가의 안보 요체는 상대적인 힘의 절대우위를 확보해야 함에도불구하고 북한을 자극한다 해서 방어적 군사력의 강화나 정신전력의 강화까지 무시해 버림으로써 건국이래 軍의 기강과 사기가 최악의 상태로 돼버린 오늘날 만일의 사태가 일어나 면 애국심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겠는가.
한편 北-美회담은 북의 핵투명성을 밝히지도 못하고 막대한 경수로 건설비용만 부담하는 남북문제의 당사자인 남한을 배제하고 진행됐는가 하면 현 군사정전위의 기능까지 무력화시켰다.
미국은 북한을 잘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국익을 위해서는 우리의 韓美공조체제도 무시할지 모르는 판인데 설상가상으로 우리의 위정자나 정치인들은 더욱 불투명한 대북(對北)인식으로 통일문제를 정권놀음에만 이용해왔으니 어찌 안보 상태가 불안하지 않겠는가.
李국장의 북한잠행기는 위정자들에게 올바른 대북정책과 국민의 단합을 통해 북한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해 통일을 착실히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눈물로 호소한 것으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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