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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호의 컴퓨터 이야기] 47억원짜리 디스크 한 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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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한 공군 중령이 기대에 부푼 얼굴로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기술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은 공군의 최정예기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날이다. 이미 500만 달러(약 47억원) 이상을 지불했다. 그런데 그 기술자는 007가방에 달랑 디스크 한 장만 들고 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컴퓨터에 디스크를 넣고 전투기에 연결하더니 30여분 만에 업그레이드가 끝났다고 했다. 이전에는 전투기가 한 번에 오직 한 대의 적기를 겨냥할 수 있었는데 이젠 동시에 여러 대의 적기를 겨냥할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에 그 중령은 한동안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일화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제 회복과 성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747 공약(7% 성장, 4만 달러 국민소득, 7대 경제대국)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는 더 벌어지고, 중국·인도와 같은 후발 개발도상국가들이 우리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이 샌드위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까.

747 경제성장의 기술적 원동력은 소프트웨어에서 찾아야 한다. 미 최정예 전투기 F-22가 기능의 80%를 의존하고, 고급차 중의 하나인 BMW가 개발비의 40%를 투자하는 대상이 바로 소프트웨어다. 이뿐 아니라 정보통신, 가전, 교통, 유통, 의료, 제조업 등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 걸쳐 개발 원가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평균 비율은 이미 33.5%(2006년)를 넘어섰다. 이렇게 소프트웨어 기술이 산업 전반에 대한 경쟁력을 좌우하지만, 우리의 인식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를테면, 소프트웨어를 매장에서 사거나 내려 받아서 설치한다는 건 옛말이다. 인터넷에 내 가상 컴퓨터가 있어서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내게 필요한 것을 사용할 수 있다. 또 지금까지는 돈을 지불하고 나서 쓰지 않는 기능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제는 전기나 수도 요금처럼 내가 쓴 만큼만 지불하면 된다. 이를 유틸리티 컴퓨팅이라고 한다. 소프트웨어가 제품이 아닌 서비스가 되는 세상이 열리고 있다.

또 컵의 색깔이 안에 담긴 커피 온도에 따라 빨간색에서 파란색으로 변하는 예쁜 컵이라면 소비자들은 보통 컵보다 두 배나 비싸도 구입할 것이다. 이렇게 컵 하나에도 창의적 소프트웨어 기술이 합쳐진다면 새로운 소비자 가치 창출이 되며, 이는 경쟁력 제고로 이어진다.

이를 위해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자동차·조선·국방·금융·에너지·농업·물류·건설·의료·통신기기 분야 등 10개 분야에 필요한 고급 인력을 1만 명씩 양성하는 ‘소프트웨어 10만 양병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부처 이기주의를 없애기 위해 대통령 산하 소프트웨어산업 진흥 TF팀을 구성하고 국제적 규모의 센터를 건립해 산학연이 힘을 하나로 합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양질의 인력이다. 현재 컴퓨터 학과는 대학 입시생과 그 학부모에게 기피 대상이다. 저임금의 프로그래머만 양성하는 곳으로 인식돼 있기 때문이다. 건축으로 치자면 돈이 되는 고급 설계사 대신 저임금 하부 작업부만 배출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건축 설계 기사처럼 고임금을 받는 소프트웨어 설계 기사와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또한 갑을병정식의 하도급 임금체계도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인호 고려대 정보통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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