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 드러난 이명박 정부 통폐합 정부 부처 ‘블랙 선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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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정부가 경제부총리를 없애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직접 경제정책을 총괄하겠다는 뜻이다. 경제정책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를 이 당선인을 정점으로 한 청와대 경제수석-경제수석실 라인이 맡을 가능성이 커졌다. 경제부처는 청와대가 만든 정책 골격에 살을 붙이는 역할을 맡게 된다.

 한반도 대운하, 연 7% 성장, 60만 명 일자리 창출 같은 공약을 실현하려면 강력한 지휘체제가 구축돼야 한다는 게 이 당선인 측의 복안이다. 여기에는 관료조직에 전적으로 일을 맡겨선 큰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이 당선인의 생각도 깔려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컨트롤 타워는 있었다.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역할을 했지만 조정 기능이 약했다. 사공이 많았다. 청와대에는 정책기획위원장, 정책실장 등이 제각각 목소리를 냈다. 경제부총리와 실세를 자처하는 다른 장관들, 청와대 386간의 불협화음도 끊이지 않았다.

 이 당선인은 이런 혼란 없이 일사불란한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인수위 관계자는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중심이 잡혀 있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5공화국 시절 전두환 대통령이 김재익 경제수석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며 전폭적인 힘을 실어주면서 강력한 컨트롤 타워를 구축했던 것처럼 말이다. 당시 김 수석의 지휘 아래 고물가라는 고질병을 잡았다.

 하지만 청와대 경제수석의 힘이 커지면 생길 폐해도 만만치 않다. 경제수석은 대통령과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실리는 자리다. 경제부처끼리의 생산적인 논의를 무시하고 청와대에서 정책을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부처의 반발은 그래서 생긴다.

 김영삼 정부 초기에 이경식 경제부총리와 박재윤 경제수석은 경제정책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으로 사이가 벌어져 ‘신경제 5개년 계획’ 수립에 애를 먹었다. 김영삼 정부 경제수석이었던 한이헌·이석채씨는 경제부총리보다 힘이 세 갈등을 불렀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는 출범과 함께 경제부총리를 없앴다. 공룡 부처인 재정경제원의 힘을 빼고, 경제수석과 경제부총리의 해묵은 갈등을 없앤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경제부총리가 없어지자 경제정책을 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나마 이규성·강봉균·이헌재씨 등 중량급 경제관료가 재경부 장관을 맡으면서 연륜으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엄밀히 말해 이들은 부처 간 현안을 조정할 권한이 없었다. 결국 3년 만인 2001년 진념 재경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경제부총리가 부활됐다. 경제부총리를 없애고, 청와대가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구도가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경제부총리 폐지 소식이 전해지자 옛 재정경제원의 부활을 소망하던 재정경제부는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재경부와 기획예산처·금융감독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등 4개 주요 경제부처가 2~3개로 통합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면서 공무원들은 동요하고 있다.

 숭실대 행정학과 오철호 교수는 “경제수석이 컨트롤 타워가 된다면 그 역할과 권한에 대해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부처 관계자들은 “경제수석실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조직이기 때문에 산적한 현안을 처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석실이 직접 경제를 조정하면 각종 문제에 대한 책임이 대통령에게 직결된다는 부담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종윤·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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