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사후의북한을가다>10.끝 연재를 끝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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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네번 본 북한.
두번은 기자 신분으로, 한번은 밀입국이었지만 보호자(?)가 있었다.그러나 그때도 안내원이 따라붙은 제한된 취재였고 마지막은 보호자도,공식감시자도 없는 잠입취재였다.
북한을 알기위한 작업을 하며 늘 생각한 것은 방문 횟수와 체류기간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늘 가졌기 때문이었다.북한지도를 펴놓고 따져보니그간 네번 방북에 50일동안 거의 훑은 셈이다.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었고 그곳에 친지가 살고 있는 이산가족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북한을 보려고 했던가.」 글을 마치며 곰곰 생각해 본다.
기자정신,곧「알려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들이 우리들의 똑같은 부모형제들일진데,이젠 끌어안는 처방까지도 제시하는 일을해야겠다는 점이다.
그들은 우매했다.배고팠다.
「어버이」를 잘못 만나 죽으라고 고생만 했다.
그러나 이젠 그 어버이도 떠나 『뭔가 허전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있었다.
그들의 허탈심리를 우리는 무엇으로 채워줄 것인가.
그러면서도 그들은 화력을 손에 쥐고 있다.
안보.경제력 과시,「개혁바람넣기-.
이것만이 처방일까.
순수주민-.그들을 끌어안는 「북한주민 사랑하기」운동이 정부에서,사회에서,교회에서 일기를 기대해 본다.그들의 불행은「우리들」탓이라는 의미에서-.
〈李讚三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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